[인터뷰] "韓 산업도 AI도 특화부터"···롭 앳킨슨 ITIF 회장의 트럼프 공략법

국내 상륙한 세계 최고 기술싱크탱크 'ITIF' AI 패권 잡으려면 LLM 아닌 '응용 특화형' 美 관세 피하려면 민감한 규제부터 손봐야 성장 가능 중소기업 진흥으로 생태계 조성

2025-05-21     김성하 기자
로버스 앳킨슨 ITIF 회장. /이상헌 기자

트럼프 2.0 시대의 부상, 제21대 대선을 둘러싼 정국의 불확실성 그리고 인공지능(AI) 대전환기를 맞은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한가운데에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국내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전 세계는 AI, 데이터, 5G, 블록체인 등 기술 패권 경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시점 가장 필요한 것은 산업 정책, 기술 규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이트다.

바로 그 '니즈'를 제공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한국에 상륙했다. 세계 최고 기술 정책 싱크탱크로 평가받는 ITIF(정보기술혁신재단, Information Technology and Innovation Foundation)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혁신 경쟁력센터를 설립하며 양국 간 정책 연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방한 중인 로버트 앳킨슨(Robert Atkinson) ITIF 회장을 만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미 협력의 방향과 효과적인 정책 조언의 조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로버트 앳킨슨 회장은 인터뷰 내내 한미 간 전략적 협력과 상호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AI와 첨단 기술 경쟁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승리하려면 감정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중심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ITIF 정보기술혁신재단 로고. /ITIF

—ITIF는 정부와 산업계 모두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독립 싱크탱크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기술 질서가 요동치는 지금 국가 중심의 이해와 독립적 분석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

"싱크탱크의 본질은 객관성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해 정책을 분석하며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ITIF는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미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캐나다, 유럽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 최초로 한국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다국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일관됩니다. 바로 민주주의 진영의 기술혁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잘못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도록 균형 잡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국가가 AI 도입 전략을 묻는다면 우리는 싱가포르, 영국, 독일 등 다양한 국가들의 정책을 비교 분석해 가장 실용적인 제안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아직 '싱크탱크'라는 개념이 익숙지 않다. ITIF는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싱크탱크는 사실상 '공공정책 연구소'입니다. 우리는 학술 연구와 현장 데이터를 종합해 정책 결정자들이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합니다. 과학 저널을 일일이 검토할 여유가 없는 정책 담당자들에게 핵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ITIF의 가장 큰 강점은 독립성입니다. 한국에도 다양한 싱크탱크가 있지만 대부분 정부 예산에 의존하고 있어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반면 ITIF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위치에서 필요할 경우 정책을 비판하고 잘한 점은 인정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적도 있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례도 있습니다. 시민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외부에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독립 싱크탱크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ITIF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 혁신 경쟁력센터'를 설립했는데 그 배경과 앞으로 어떤 방식의 협력을 구상하고 있는지 설명해달라.

"ITIF는 점진적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해 왔고 한국은 기술 중심지인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신뢰하고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나라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정책적 사고나 전략들이 매우 정교한 국가이며 우리에게 있어 한국센터 설립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한국 혁신 경쟁력센터는 세 가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첫째, 한국의 혁신 체계를 분석하고 정책을 제안합니다. 둘째, 원자력·양자컴퓨팅 등 전략 분야에서 미·한 기술 협력을 증진합니다. 셋째, 민주주의 진영 내 기술 경쟁에서 한국이 핵심 역할을 하도록 돕는 전략적 허브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로버트 앳킨슨 회장이 한국 AI 정책 방향성에 대해 제언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AI가 각국이 경쟁적으로 육성하는 핵심 전략 산업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나.

"솔직히 말해 한국은 아직 AI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잠재력은 매우 큰 나라입니다. 현재 AI 분야에서의 양대 선도국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정책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한국은 유럽식 사전 규제보다는 더 유연하고 실험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AI 활용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규제보다 채택 전략(adoption strategy)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둘째 교육이 핵심입니다. 한국은 공학에는 강하지만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컴퓨터 과학 중심 대학을 집중 육성하고 박사급 인력과 세계 수준의 연구자를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셋째 한국이 집중해야 할 건 LLM(초거대언어모델)이 아니라 '응용 특화형 AI'입니다. LLM을 개발하는 데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한국의 강점인 해운, 제조, 물류 등 산업별 특화 AI야말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

—AI뿐 아니라 반도체, 첨단 기술 제조업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도 한미 간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 전략 기술 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공정한 협력을 원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일부 분야에서 충분히 기여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콘텐츠 배달 비용 부과, 무역수지 적자, 디지털 플랫폼 규제 같은 이슈들이죠. 트럼프는 이런 문제에 매우 민감합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을 해소해야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위협에 함께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전략적으로 일부 조정 가능 영역을 양보하면 오히려 더 큰 협력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관세 대응 전략에 대해 답변하고 있는 로버트 앳킨슨 회장. /이상헌 기자

—미국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트럼프 진영은 관세를 만능 도구처럼 활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지 단순한 '무역 장벽'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제 예측으로는 두 방식을 혼합할 가능성이 큽니다. 협상 의지와 성의를 보이는 국가는 10% 수준에서 조정하고 그렇지 않은 국가는 30~40%까지 관세를 인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럴 때 한국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와 고용 창출 사례를 적극 부각해야 합니다. 동시에 디지털 시장 접근성, 플랫폼 규제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유연한 협상 전략이 필요합니다. 트럼프는 단순한 괴짜가 아닌 명확한 전략을 가진 인물입니다. 한국이 그 전략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명한 합의'를 끌어내 대응한다면 위기 속에서 기회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정책결정자에 실제로 통하는 정책 제안은 어떤 특징을 갖춰야 한다고 보나.

"무엇보다 정책결정자가 당면한 문제와 직접 연결돼야 합니다. 예컨대 ITIF가 제안했던 '지역 기술 허브' 모델은 실리콘밸리 밖 지역에도 R&D와 인프라 투자를 유치하자는 제안이었고 이는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에 실제 반영됐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안을 제시해야 하며 산업계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싱크탱크들이 추상적 조언에 머무는 반면 ITIF는 즉시 적용 가능한 정책 설루션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ITIF가 앞으로 한국과 어떤 방식의 정책 연계를 추진할 계획인지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는 한국에 조언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외부자의 관점에서 글로벌 비교 데이터를 제공하고 정책 논의의 시야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기술 스타트업 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은 높지만 생산성은 낮은 것도 구조적 과제로 보입니다.

정부는 모든 중소기업에 동일하게 지원하기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더 많은 중견기업이 등장해야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몰리지 않는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될 것입니다. 그런 변화에 ITIF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공동으로 마련한 '2025 KAIST 국가전략기술 혁신포럼' 포스터. /ITIF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