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더봄] 익숙한 불편을 의심할 때 시작되는 작은 변화, 무선 선풍기
[권혁주의 Good Buy] 추억 속 유선 선풍기는 낭만 아닌 불편이 아니었을까 무선 선풍기 하나로 라이프스타일의 작은 변화
집안 어딘가 묵혀 두었던 선풍기를 꺼낼 계절이 왔다. 때때로 낮 기온이 30도까지 올라 구슬땀 맺히는 오뉴월. 더 덥고 습해지는 한여름이 되면 에어컨 리모컨을 찾겠지만 아직은 선풍기 하나만으로도 견딜만한 시기다.
어릴 적 기억 속 선풍기는 이렇다. 투박한 철제 외관과 새파란 날개, 거실 바닥에 늘어진 전선 코드. 조용하지만 덜 시원한 미풍과 시원하지만 시끄러운 강풍 사이에서 언제나 원하는 바람 세기는 약풍으로 타협했고, 바람 회전과 방향 조절을 위해서는 선풍기 헤드를 힘주어 돌려야 했다. 돌릴 때마다 본체에서 관절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곤 해서 고장 날까 멈칫했던 순간들. 돌아보니 흐뭇한 낭만 같지만 그 시절에는 일상적인 불편이었다. 어쩌면 당연히 받아들였던···.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선풍기가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다. 무선 선풍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 기능 면에서 혁신적인 제품들이 전자제품 매장에 즐비하다. 편의성뿐만 아니라 공간 활용도, 안전성, 이동성 등 다양한 옵션이 제공된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을 앞두고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는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들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선풍기도 이제 단순한 가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 온 집의 첫 여름을 나기 위해 무선 선풍기를 들였다. 루메나(LUMENA)라는 브랜드 -쇼호스트인 필자가 방송에 출연해 판매했던 브랜드- 의 제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과 직관적인 버튼, 퀄리티 있는 만듦새, 무엇보다 '무선'이라는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풍기가 더 이상 한자리에 붙박이로 있지 않아도 되니, 30대 우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부모님 세대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들은 미감보다는 실용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도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 구동을 꺼리시는 부모님께 선풍기 한 대를 선물해 드렸다. 유용한 선풍기 한 대가 출가외인 자식보다 효자일 거라 상상하며···. 특히 오랜 시간 집에 있는 부모님들은 방마다 옮겨 다닐 일이 많다. 부엌에서 요리할 때, 거실에서 TV 볼 때, 책을 읽을 때, (소파나) 침실에서 잘 때, 이럴 때 선풍기를 콘센트 위치에 맞춰 위치를 옮기는 일.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부모님의 이런 수고를 덜어줄 무선 선풍기를 떠올려본다. 가볍고 조용하면서도 심지어 충전 한 번이면 몇 시간은 거뜬하다. 기술이 이만큼 좋아졌음에 새삼 ‘좋은 시절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편리한 생활의 계기는 물론이고, 오히려 (방마다) 여러 대를 사지 않아도 되니 괜찮은 무선 선풍기 한 대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지 않나 싶다.
경우에 따라 고의적 낭만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때도 있지만 요새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면 ‘그래 나이 들수록 편한 게 장땡(?)이지’ 싶기도 하다. 자식 다 키워놓고(어느덧 마흔인 필자) 이제는 내 몸 편한 거 챙겨야겠다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무선 선풍기 같은, 작지만 실용적인 가전이 눈에 들어온다. 꼭 최신 기술에 민감하지 않더라도, 생활의 작은 불편을 해소해 주는 제품은 누구에게나 반갑다. '그런 제품이 있었는지', '있다고 해도 많은 것 중 어떤 걸 골라야 했는지' 몰랐을 뿐이다.
익숙한 불편을 의심할 때, 변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데서 시작된다. 올여름 무선 선풍기 하나쯤 들여보는 건 어떨까? 이미 쓰던 선풍기가 아직 정정하다 해도, 삶의 질을 바꾸는 소비는 도전해 볼만하다. 고작 무선 선풍기가 그런 변화의 좋은 출발점이 될지 모른다. 아니면, 부모님께 그런 선물을 한번 해보는 것도?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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