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19) 초기 치매냐 묻는 순간 아무도 대답 못 했다
초기 치매 입주민 늘지만 의료·돌봄 법적 기준 없어 조기 발견·진료 체계 필요
실버타운 입주민 중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버타운은 요양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치매 조기 발견이나 돌봄 전환을 위한 의무 시스템은 없다. 대응 체계는 사실상 시설 재량에 맡겨져 있는 상태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만 60세 이상 건강한 노인이 입주하는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에서도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입주민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대응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질환이지만 실버타운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의료·복지 시스템은 시설마다 다르다.
'2024 중앙치매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 995만5476명 기준 추정 치매 유병률은 9.15%이며 추정 치매 환자 수는 약 91만명이다. 2025년 97만명, 2030년 121만명, 2050년에는 225만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돼 치매는 노년기 대표 질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체 치매 환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실버타운 등 노인주거시설 내 치매 환자도 함께 늘고 있다. 서울 도심의 A 중형 실버타운 운영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최근 몇 년간 시설 내 의원을 치매 진단 또는 검진 목적으로 거쳐 간 어르신이 약 50명 정도 된다"며 "치료를 끝까지 받으신 경우도 있고 중간에 자발적으로 중단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버타운은 장기요양시설이 아닌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의료나 돌봄 제공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다. 치매 조기 검진이나 간호 인력 배치 등도 제도화돼 있지 않아 각 시설의 재량에 따라 대응 체계가 달라지는 실정이다.
A 시설 운영자는 "도심형 소규모 실버타운 중에서는 의원급 병원을 직접 운영하는 곳이 드물다"며 "노년기엔 치매와 함께 육체적 통증도 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실버타운 내 초기 치매 입주자가 점차 늘고 있는 현실에 비해 이를 감지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구조적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B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 수도권 고급 실버타운에 방문했을 때 식당 옆 정원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갇힌 어르신을 본 적이 있다"며 "본인도 '한 번도 번호를 잊은 적이 없다'며 스스로 놀라셨는데 그걸 보며 치매 조기 발견의 사각지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퇴소시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정기 검사를 권유해도 입주민 입장에서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그러므로 건강 상태가 변화해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실버타운 내부에서 돌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실버타운 업계에서 요양시설과의 연계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여성경제신문이 보도한 '[실버타운 2.0] (6) 공빠TV 실버타운 실체를 파헤치다···"현명한 노인은 여기 간다"'에 따르면 실버타운 전문 유튜브 채널 '공빠TV' 문성택 대표는 "초기 치매 증상이 있는 입주자들이 꽤 있다"며 "일반 실버타운, 케어형 실버타운, 요양시설 등이 연계된 삼각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다수 실버타운이 방문요양이나 주간보호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실제로 삼성노블카운티,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서울시니어스타워 가양지점 등은 내부에 돌봄과 연계된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B 센터 관계자는 "일부 실버타운처럼 요양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건강한 어르신과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같은 공간 안에서 구분돼 생활할 수 있는 방식이 최선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본다"고 했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는 "일부 도심형 실버타운은 민간 병원과 연계된 곳도 있지만 치매 검사는 본인이 안 가면 의미가 없다"며 "최소한 지역 내 치매안심센터나 복지관과의 협약을 통해 공공복지 자원과 실버타운이 연결되도록 정부 차원의 기준이 마련돼야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다만 현실적으로 치매안심센터 입장에서도 실버타운은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지역사회에 방치된 치매 환자와 독거노인도 많은 상황이라 실버타운까지 공공복지 자원이 닿기 어려운 구조인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