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16) 은퇴자 주거 모델 UBRC, 모든 노인 포용할 수 있을까

교육·문화 기반 실버타운, 특정 계층 중심 설계 지방대의 UBRC 추진, 재정과 복지 목적 혼재 공공형 실버타운 부족, 복지 형평성 과제 부각

2025-05-14     김현우 기자
지방대가 중심이 된 대학 연계 실버타운,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그레이스톤

실버타운은 중산층 이상 노인을 위한 거주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가 정책도 해당 계층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경향을 보인다. 지방 대학이 중심이 된 대학 연계 실버타운, 즉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는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다. 평생 교육, 문화 향유, 의료 서비스를 결합한 신개념 시니어 레지던스다. 그러나 이 모델이 노인 복지의 보편적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수혜자가 제한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1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UBRC는 대학 인근에 은퇴자 전용 주거 단지를 짓고 입주자는 학교의 교육·의료·문화 인프라를 활용하는 구조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시작돼 국내도 빠르게 도입 중이다.

부산 동명대는 서면 인근에 600가구 규모 UBRC를 조성하고 있다. 반려동물학과, 승마학과 같은 특화 학과도 신설해 은퇴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광주의 조선대는 조선대병원 인근 부지에 700가구 규모 단지를 계획 중이다. 두 대학은 프로그램 교류도 추진한다. 강원 원주의 상지대도 UBR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UBRC는 겉으로 보기엔 혁신적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능력 있는 노인’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와 교양을 향유할 여력 있는 이들, 즉 중산층 이상 은퇴자만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실제 UBRC는 입주 비용이 수억원에 달하거나 고정 월세가 필요하다. 미국 뉴저지의 ‘스라이브 몬트베일’은 월 평균 8000달러(약 1100만 원) 수준이다. 국내 역시 민간 주도의 UBRC 모델은 고비용 구조를 피하기 어렵다.

김민규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공형 실버타운은 공급도, 접근성도 한참 뒤처져 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고령자 복지주택은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격차는 곧 '복지의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UBRC는 대학에도 명분을 제공한다. 학령인구가 줄어 재정 위기에 빠진 지방대에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자에게는 평생 교육을, 대학은 인구 유입과 교육 수요 확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생존을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UBRC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노인 복지와 대학의 생존 전략이 얽힌 UBRC 모델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남는다"면서 "일부 지방대는 주거·의료·교육 프로그램을 일괄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현실에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프로그램은 이상적이지만 실제 운영은 비용과 인력 모두 과중하다”며 “고령 입주자들의 안전, 질병 관리, 시설 유지까지 대학이 책임지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다.

UBRC가 제시하는 또 다른 명분은 ‘세대 교류’다. 대학생과 고령자가 한 울타리에서 살며 소통한다는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세대 간 생활 패턴 차이, 소음 민감도, 사생활 문제 등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후마니타스'의 경우, 대학생들이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조건으로 무상 거주한다. 이상적 사례로 평가받지만 이는 철저히 구조화된 관리 시스템과 인센티브가 전제돼 있다. 

노년학 연구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UBRC는 고소득 액티브 시니어에겐 최적이지만, 국민 복지정책의 해답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편향돼 있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