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 알고 보면 굉장한 결심

[최익준의 낭만밖엔 난 몰라] 직장생활을 자발적 퇴사로 마무리했다 퇴임은 '돌연한 출발'이자 굉장한 여행임을 카프카의 단편집을 읽으며 깨달았다

2025-07-15     최익준 박사·산업정책연구원 교수/(주)라온비젼 경영회장
부조리의 소설가 카프카가 현실의 부조리를 다시 비틀어 미래를 말했습니다.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돌연하게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깨 빵을 나눠 먹었던 보스포루스(Bosporus) 바다의 갈매기를 다시 만나러 떠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았습니다. /사진=최익준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 선상에서 찍은 사진)

"떠나느냐 버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30년 동안 쉬지 않고 새벽별 보며 출근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깊고 푸른 밤 과로에 멍든 마음으로 퇴근하는 직장 생활을 자발적 퇴사로 마무리하던 날이었습니다. '돈도 명예도 경쟁도 다 싫어지면 떠난다'는 오랜 결심을 자발적 사표로 감행했습니다. 회사의 주주, 임직원과 이해관계자 고객들이 보기엔 놀랍고 의외의 결정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동료들과 열띤 토론의 추억들을 지웠습니다. 전장의 무기고처럼 긴장감 넘치던 사무실과 책상과 서랍을 내 흔적 하나 남지 않도록 비웠습니다. 수십 년 내 흔적을 한 시간 만에 지우며 남몰래 혼자 울었습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결별은 억장이 무너질 만큼 아팠습니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완벽주의자 경영자로 오래 고생시킨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섭섭한 마음은 단 1퍼센트도 없었습니다.

 

부조리의 대표 소설가 카프카가 단편집 제목 <돌연한 출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갑작스러운 퇴임은 내 인생 여정에 없었다고 믿었던 '돌연한 출발'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한두 개 문장이 제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헤어질 인생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출발이라는 것이다."

“어딜 가시나이까? 주인 나리.”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만 나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적지를 알고 계시는 거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라고 했으렷다. 그것이 나의 목적지이니라.” “나리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따위 것은 필요 없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 봐야 양식이 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

부조리의 대표 소설가 카프카가 단편집 제목 <돌연한 출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갑작스러운 퇴임은 내 인생 여정에 없었다고 믿었던 '돌연한 출발'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한두 개 문장이 제가 익숙한 것으로부터 헤어질 인생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 책 표지 /사진=최익준

저는 앞으로도 틈틈이 돌연한 출발을 할 것 같습니다. 습관으로 마시는 커피의 진짜 맛을 알고 싶어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해 색다른 커피 맛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겁니다. 수채화 그림을 그리다가 지금은 서양미술사를 배우며 도슨트(Docent)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미술관에서 당신을 만나 그림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일에 빠져 있던 시절 언감생심 책장에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 100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버킷리스트에 올려 두었던 다른 100권의 시리즈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제가 앞으로 무엇이 될 지 무엇을 할지는 정녕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카프카의 글처럼 돌연한 출발은 제가 굉장한 여행을 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었습니다.

물리학의 E=MA 에너지 법칙의 공식대로, 새로운 여정의 힘은 질량에 가속도가 곱해져 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가속도가 붙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인생 2막 돌연한 새출발에 가속도가 붙어 가고 있습니다. 내 가슴 속 숨어 있던 새로운 페르소나의 열정이 불타오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인생의 긴 여정에서 인생 2막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한다면 "어떻게 미래의 양식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 하나를 가진다면 이미 새로운 출발은 시작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작이 반이니까요. 이 질문 때문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답답함이 생긴다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자고요.

밖으로 나가면 시원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고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어 줍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며 걷다 보면 새로운 호흡법과 아이디어가 생기니까요. 그것들을 매일 반복하면 새롭고 돌연한 출발들이 모여서 도전과 여정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혹시 일이 필요하면 지자체의 고용 정보관을 찾아 만나면 어떨까요? 새로운 취미를 찾아가서 웃으며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보면 어떨지요? 우리가 새로운 것들에 무모한 기대를 걸지 않거나 새로운 출발을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말 굉장한 여행이 될지 모르니까요.

부조리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현실의 부조리를 다시 비틀어 미래를 말했습니다.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돌연하게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깨 빵을 함께 나눠 먹었던 보스포루스(Bosporus) 바다의 갈매기가 생각나서 다시 만나러 떠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았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도착하는 대로 다시 편지글 보낼게요!

안녕~

여성경제신문 최익준 박사·산업정책연구원 교수/(주)라온비젼 경영회장 
sebastian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