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체코 원전 '미련'···재처리 혼합 연료 수출이 핵심
재처리 더 이상 입찰 조건 아닌데 EU 원자력 패권 국가 ‘막판 견제’ 美도 블록화 경계할 수밖에 없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을 둘러싸고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전력공사(EDF)가 한국수력원자력의 수주 가능성을 견제하고 나선 배경에 ‘재처리 혼합연료(MOX) 수출’이라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지만 체코 측이 당초 입찰 요건에서 재처리를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프랑스의 막판 개입이 오히려 국가간 갈등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13일 체코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루카시 블체크 장관은 “스테판 세주르네 EU 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으로부터 원전 계약 절차를 중단하라는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외무장관 출신으로 이번 서한은 체코 법원이 EDF의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인 직후 발송됐다. 프랑스전력공사는 한국수력원자력에 입찰 경쟁에서 밀린 이후 계약 중단을 위한 법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프랑스가 재처리 연료 수출국으로서 두코바니 원전에 MOX 연료를 공급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체코 현지에서는 실제로 IAEA 산하 원자력기구(NEA) 비공개 회의에서 체코 원자력연구소(CVŘ) 관계자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전제로 한 에너지 전략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때 “새 원자로는 MOX 연료를 연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입찰 조건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단독] 체코 원전 입찰 조건에 '재처리' 끼웠다···IAEA 비공개 문건 입수
하지만 체코전력공사(CEZ)는 최근 새 원전을 지을 때 여러 회사의 기술을 조합해 쓰는 방식이 아니라 한 회사만을 선정해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또한 체코 정부 산하 방사성폐기물관리청(RAWRA)은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체코가 직접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프랑스가 주장해온 "MOX(우라늄-플루토늄 혼합 연료)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입찰 요건에서 사실상 제외된 것으로 풀이된다.
EU 당국자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자국 기업 이해를 반영한 ‘외교적 압박’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 1974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과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결로 인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농축이 제한돼 있다. 따라서 프랑스처럼 혼합연료 제조 및 재처리 수출이 불가능하다.
업계에선 미국 역시 고민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가 체코 원전 입찰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고, 한국이 사실상 탈락할 경우 체코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라톰(EURATOM) 체제에 더 깊숙이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러시아산 핵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대가를 이미 치른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평화적 핵연료 순환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기술력조차 특정 블록 내에서만 통용되는 구조로 고착된다면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