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한수원 국제 갈등 ‘로펌비’ 국민 세금인데···정부, 팔짱 끼고 방관만

집안싸움 중재 끝내 회피하는 정부 체코서 물꼬 튼 K-원전 수출붐 ‘찬물’   1억弗 이상 중재 32개월 ‘장기화 우려’ “산업부·기재부 등 부처 적극 개입 필요”

2025-05-12     유준상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호기의 모습 /한국전력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 사업비 정산과 관련해 약 11억 달러(1조5692억원) 규모의 집안싸움을 벌이다가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제소 사태로 번졌다. 

UAE 원전 수주가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데다 엄연한 정부 산하 공기업 간 갈등임에도 한국 정부는 양사 간 계약 사항에 따른 문제라 개입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양사가 국민 세금으로 대형 로펌을 앞세워 소송에 임할 경우 모두 국민 세금이 쓰여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가 내부 다툼 정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2일 여성경제신문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민영 기업 간 분쟁과 달리 정부 산하 공기업 간 공기업의 다툼을 조율하는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 모인다.

공기업 간 갈등은 민간 기업 간 갈등과 본질상 다르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은 출자를 정부에서 받지도 않을뿐더러 정부는 이들의 사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명분이 매우 적다. 

과거 2011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진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바 있다.

하지만 한전은 산업부 산하 시장형 공기업으로 산업부가 한전의 정원과 예산은 물론 전기요금 등 주요 사업에 직접 개입할 권한을 가진다. 한전은 한수원의 최대 주주이자 한수원의 100% 지분을 가진 모회사다. 

게다가 앞으로 한전과 한수원은 지속적으로 대형 로펌을 앞세워 소송에 임할 것인데 모두 국민 세금이다. 양사는 이미 각각 국제 분쟁에 대비해 로펌을 선임해 둔 상태다. 권한 밖 법적 중재가 아닌 정부의 무게로 양사가 협상에 임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는 대목이다. 

유승훈 과기대 교수는 “공기업 간 갈등이므로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소관 부처인 산업부가 하거나 공기업 경영평가를 진행하는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재 한수원이 중재까지 나서게 된 것도 향후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배임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서라고 보이는데 그렇다면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판단을 해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소송이나 중재로 해결하기 전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국제 중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재 절차는 사전 준비 단계와 본 판정 단계 등 크게 2단계로 나뉜다. 사전 준비 단계에서는 중재 판정부가 구성되고 절차와 일정이 협의된다. 이후 본 판정 단계에서는 양측이 서면과 문서를 제출하면 이에 대해 심리한 뒤 판정을 내리게 된다.

LCIA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2024년 비용 및 기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중재 기간의 중앙값은 약 20개월이다. 분쟁 금액이 많을수록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은 장기화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분쟁 금액이 100만 달러 이하면 평균 약 12개월이 소요됐지만 1억 달러를 초과하면 평균 약 32개월이 걸렸다.

중재 절차가 길어지면 각 회사가 부담해야 할 중재 비용이 커진다. LCIA는 중재인의 수수료와 사무국의 행정비용을 모두 시간당 요율로 계산한다. 그 때문에 중재 절차가 길어질수록 중재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LCIA 보고서에 따르면 중재 절차가 6개월 미만인 겨우 대부분 총비용이 5만 달러 이하였으나 24개월을 초과하게 되면 절반 이상이 3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발생했다.

대외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향후 원전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글로벌 기업인 한전이 100% 자회사인 한수원과의 비용 문제를 조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기업의 집안싸움이 국제적 망신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업계는 정부의 내부 중재 없이 국제 중재가 장기화한다면 체코 원전 수주로 기세를 올리는 K-원전 수출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