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인 김문수냐, 실리인 한덕수냐 싸움···단일화 딜레마 악화일로
金, 예정된 토론회 불참에 연기 ‘대통령 후보 지위인정’ 가처분 지도부는 후보 교체 카드 만지작
국민의힘이 대선을 26일 앞두고 후보 단일화 문제로 발목이 잡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문수파와 한덕수파로 갈려 정면 충돌하는 탓에 국민적 실망감만 가중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8일 국민의힘은 “금일 예고됐던 양자 토론회는 불성립으로 취소됐다”고 공지했다. 앞서 전날 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6시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일대일 토론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에서 “후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당이 일방적으로 정한 토론회는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자 선거운동을 한 다음 오는 14일 토론회를 열자고 역제안했다.
하지만 해당 제안도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공개 거부해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단식 농성에 돌입한 권 원내대표는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원 82%가 후보 단일화를 바라고 있고, 이 중 86%는 오는 11일 후보 등록 이전에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면서 김 후보의 결단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집안싸움은 명분에서 우위인 김문수파와 실리에서 우위인 한덕수파 간 기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김 후보는 경선에서 공식 선출됐다는 정당성을 내세워 당헌 제74조의 ‘당무 우선권’을 발동했다. 지도부의 일방적 단일화 추진을 제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법적 공방전도 돌입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남부지법에 “국민의힘이 제3자에게 대통령 선거 후보 지위를 부여해선 안된다”는 취지의 ‘대통령 후보자 지위인정’ 가처분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당 지도부는 ‘당헌 제74조 2’의 대통령 후보자 선출에 관한 특례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대통령후보자 선출 규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대선 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후보자선거관리위원회가 심의하고 비상대책위의 의결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이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했다"며 반발했고 전날 의총에서 김기현·주호영 의원도 우려를 표했다.
한덕수파는 당장 단일화를 끝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막강한 상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기려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앞서는 후보가 나서야 유리하다는 정략적 계산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이날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재명 후보 43%, 한덕수 예비후보 23%, 김문수 후보 12%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권영세 위원장은 겉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사실상 한 후보에 유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김문수 후보가 주장하는 등록 후 단일화는 한덕수 후보가 11일까지 단일화가 안 되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단일화는) 이뤄질 수 없는 허구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협상이 결렬될 때의 대응 방안 질문에는 “일단 여론조사는 계속 간다”며 “11일까지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대선 승리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필요하면 결단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가 11일 전 단일화를 거부할 경우 당이 여론조사를 토대로 일방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강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지도부는 최악의 경우 후보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당헌당규상 후보 교체에 대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며 “국회의원 후보 선출할 때도 공천장을 주고나서 변경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여러 가지 포괄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힘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이 후보는 이날 민생 정책협약식 후 기자들과 만나 “강제 결혼은 들어봤어도 강제 단일화는 처음 들어봤다. 조금 웃기다”며 “이해가 안 된다. 단일화를 위한 희생 번트용 후보를 뽑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국민의힘에 계파를 벗어난 통합과 기득권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보수의 변화가 있어야만 당 밖의 중도까지 함께할 공간이 생길 것이어서 후보는 비윤⋅반윤⋅탈윤과 정치적 원한이 없어야 한다"며 "문제는 현재의 친윤 주류 세력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와 국민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가치를 복원할수 있을지도 관건"이라면서 "개인의 자유와 이윤만 강조하는 것은 보수 철학의 빈곤이며, 친윤 기득권을 내려놓거나 해체를 전제로 하지 않은 빅텐트는 전략 빈곤의 정치공학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후보와 한 후보는 이날 오후 4시 30분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단일화 방안 회동을 한다. 앞서 두 후보는 전날 저녁 1시간 15분가량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독대해 빈손으로 끝났지만 다시 극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