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투표율이 선거를 결정한다: 적극 투표층 감소의 함의
[신율 칼럼] 탄핵 직후 대선, 기대 이하 18%가 뽑을 후보 못 정해 낮을수록 이재명 후보 유리
정치학에서 흔히 쓰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정치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 확신을 가리킨다. 대규모 시위나 집회가 실제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때 이 효능감은 급격히 상승한다. 2016~2017년 촛불 시위와 그 결과로 이뤄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 효능감이 이론적으로 극대화될 수 있는 대표 사례다.
정치적 효능감이 높을 때 선거가 치러지면 투표율도 상승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그렇다면 탄핵 직후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어땠을까? 2017년 5월 9일 실시된 19대 대선의 최종 투표율은 77.2%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차례 대선 평균(76.96%)과 비교하면 불과 0.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탄핵 직후 치러진 대선’이라는 사건성과 그로 인한 정치적 효능감의 상승 가능성에 비추어 보면 기대만큼 높은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19대 대선을 한 달 앞둔 2017년 4월 둘째 주 한국갤럽 정례 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90%에 달했다. 그러나 투표 당일 확인된 실제 투표율은 이보다 13%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촛불집회에 의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효능감이 왜 투표 참여로 이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쾌한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1일 발표된 ‘전국 지표조사(NBS)’(4월 28~30일 성인 1000명 전화 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라는 적극 투표층은 84%로 집계됐다. 2017년과 같은 ‘탄핵 직후 대선’이지만 적극 투표층은 19대 때보다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실제 투표율은 19대 대선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차기 대통령 적합도’ 항목에서 의견을 유보한 비율은 18%였다. 직전 조사(23%)보다는 감소했지만, 여전히 통계적 오차 범위 안의 변동이다. 대선을 불과 한 달 남겨둔 시점에 18%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참고로 2017년 19대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의 여론조사인 한국갤럽 조사에서 의견 유보층은 10%였고 2022년 20대 대선을 한 달 앞둔 조사에서도 10%에 그쳤다.
지금은 그 두 배 수준이다. 이들은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이번 대선이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낮아질 경우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진보 후보에게 불리하다고 말한다. 노년층 특히 60세 이상은 투표율이 높기 때문에 낮은 투표율은 20·30대 진보 성향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관측은 더 이상 이론적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현재 60대 유권자를 ‘전통적 보수’로 단정하기 어렵고 20·30대 남성 사이에서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히려 투표율이 낮을수록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본다. 한국갤럽이 매월 말 발표하는 ‘주관적 이념 지형’(4월 22~24일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한 응답자는 26%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는 31%였다. 주목할 점은 진보층의 75%가 이재명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전체 유권자 가운데 약 20%가 이 후보를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은 투표 참여 의지가 특히 높은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투표율이 높아지면 이 20%의 영향력이 희석되지만, 투표율이 낮으면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이 증폭된다. 결국 이번 대선의 관건은 투표율이며 그 높고 낮음이 결과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다. 변수도 많고 말도 많은 이번 대선에서 과연 정치는 생물이라는 점을 다시 증명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