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사회적 합의’ 김문수는 ‘기업 자율’···정년 연장, 경제 셈법 차이점은
‘퇴직 후 재고용’ 두고 경제·노동계도 입장차 정년 연장 방식 따라 고용·재정 변수 달라져
정년을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늘릴지 대선을 앞두고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고령층 일자리를 둘러싼 제도 설계가 기업과 청년층, 정부 재정까지 흔들 수 있는 만큼 정치권도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은 생산 가능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반면 고령층의 계속근로에 대한 제도적 준비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도 엇갈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정년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자는 입장을 밝혔으며 최근 한국노총과 ‘65세 정년 연장 법제화’ 과제가 포함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정년 연장 자체에는 열린 입장을 보이되 연장·재고용·폐지 여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지난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정년연장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적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단절은 생계의 절벽”이라며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하려면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퇴직으로 은퇴자가 빈곤에 내몰리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정년연장 TF를 운영하고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높이는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김 후보는 정년 연장에 대해 보다 신중한 태도다. 기업이 정년 제도를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해 재고용, 연장, 폐지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2월 ‘2030·장년 모두 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법 개정을 통한 일률적 정년 연장은 청년 취업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금 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은 기업의 재정 부담을 가중한다"며 "정년 연장 논의는 임금체계 개편과 반드시 연동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노동계도 각기 다른 해석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는 고령층의 생산적 일자리 유지를 위한 정책 수단으로 단순한 정년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의 정착이 더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고령 근로자 1명이 추가로 고용될 때 청년 근로자가 약 0.4~1.5명 줄어들 수 있으며 이러한 대체 효과는 특히 대기업·공공부문처럼 청년층 선호가 높은 일자리에서 두드러진다는 진단이다. 연공형 임금체계와 고용 경직성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안으로는 일본처럼 재고용 제도를 점진적으로 법제화하고 고용 구조 개편과 병행하는 방식 등이 언급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법정 정년 연장이 현실화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고령 인력 활용 확대를 위한 노동시장 과제' 보고서에서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 역시 고령자의 고용 안정보다 노동시장 내 부작용을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임영태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최근 노동계를 중심으로 65세 정년연장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데 법정 정년을 일률·강제적으로 연장할 경우 그만큼 기업의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활성화 해 고령자의 일할 기회를 확보하고 동시에 청년 일자리도 함께 보장하는 세대 공존 방안이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퇴직 후 재고용’ 방식에 공통적으로 반대하며 법적 정년연장을 중심으로 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20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연금수급 개시연령과 연계해 정년연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은 "저출생 고령화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노인빈곤율 해소를 위해 민주노총의 법적 정년연장 논의가 불가피했다"며 "이미 국회, 정당, 경사노위 등에서 논의하는 상황에서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적 정년 연장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에 대해 별도 대책과 투쟁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라며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은 노동계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퇴직 후 재고용 의무를 점진적으로 부과하자는 주장은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 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8일 ‘한국은행 발간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이슈노트'에 관한 입장'을 통해 "퇴직 후 재고용의 경우 대부분 촉탁 비정규직 신분으로 전환되는데 동일 업무를 하면서도 대폭의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저하를 겪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 경직성 완화가 청년고용으로 이어질 지도 의문"이라고 짚었다.
또한 "2016년 60세 정년연장 도입 당시에도 기업 부담 완화와 신규 채용 확대 등을 이유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으나 막상 정년 연장 이후에는 이러한 효과가 감소하거나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법정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과장해 임금체계를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하려는 사용자의 꼼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연구‧기술‧교육 등 전문 영역의 경우 법정 정년을 늘려 양질의 숙련노동이 오래 일하도록 하고 이를 통헤 조기 은퇴에 따른 사회적 비용부담을 줄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년제도는 단순한 고용 연장 정책이 아니라 기업의 인건비 부담, 청년층의 신규 고용 여력, 고령층의 소득 안정성, 정부의 재정 지속 가능성 등과 직결된 경제 정책인 만큼 향후 논의가 정치적 수사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와 수치 기반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경제학계 인사는 여성경제신문에 "정년 연장은 단순히 정년 시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층 소득 공백, 기업의 인건비 구조, 청년 고용 여력 등 여러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제도 설계에 따라 효과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지에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