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12) 오픈채팅 못하는 입주자 '왕따' 될라
QR코드·오픈채팅 활용 못하면 동아리 참여 어려워 디지털 격차, 노인복지주택 노년층의 새로운 소외
"스마트폰 잘 쓰시나요? 우리 시설은 스마트폰 하나로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실버타운 입주 상담 현장. 담당자의 첫 질문은 스마트폰 활용 능력이었다. 자사의 실버타운 디지털 구축 체계를 홍보려던 직원. 시설 내 어플과 오픈채팅 활용을 위해 스마트폰 활용 능력을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입주를 준비하던 75세 이모 씨는 당황했다. 스마트폰은 전화 걸고 받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 씨는 "노인이 스마트폰을 왜 잘 써야 하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노인들마저 디지털 장벽을 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된 것 같다"고 했다.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실버타운 등 노인거주시설에서 조차 디지털 소외 계층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실버타운 입주 조건은 재정적 여유와 건강 상태였다. 한데 실버타운 등 노인거주시설 생활이 디지털화되면서 스마트폰 활용 능력이 사실상 필수 조건으로 떠올랐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 주요 실버타운은 입주민들 간 소통 수단으로 오픈채팅방을 운영 중이다. 동아리 가입 역시 QR코드를 활용한다.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면 활동 참여조차 어렵다는 얘기다.
한 유명 실버타운에서는 신규 입주자를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 능력 평가까지 진행한다.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별도로 이수해야 한다.
입주자들 사이에선 "스마트폰이 없으면 실버타운에서도 외톨이가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모르는 일부 입주자는 소모임 참여를 포기하고 홀로 생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버타운의 디지털화가 노년층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긍정적 변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가 새로운 소외층을 만들 위험성도 경고한다.
실버타운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입주자들이 스마트폰 사용에 서툴다는 이유로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는 현상도 종종 나타난다"며 "모임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작 커뮤니티 활동 참여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2024 디지털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스마트 기기 활용 능력은 전 연령층 평균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의 QR코드나 앱 활용능력은 30% 미만이었다.
문제는 현재 실버타운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의 수준이 매우 초보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이 단순히 '메신저 사용법' 정도로 끝난다. 이마저도 자발적 참여 방식이어서 접근성이 낮다.
한국노인정보원 박상훈 연구위원은 "스마트폰 사용 능력이 입주 조건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에 맞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라며 "단기성 교육으로는 절대 디지털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디지털 소외 문제는 결국 사회적 고립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심리적 우울감이 깊어진다. 노년층에게 디지털 장벽이 새로운 형태의 고립을 낳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년층 디지털 교육 확대와 함께 사용자 친화적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 교육을 넘어 노인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이나 인터페이스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실버타운 디지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흐름이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실버타운은 노년층에게 또 하나의 벽을 만들 뿐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의 적극적 개입과 정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