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vs한국 결제 사기 대응 온도차···'이용자 부담'에서 갈렸다
영국·EU·호주 등 사업자도 손실 부담 KB국민은행, 책임 분담 제도 확대해 은행과 고객 간 사고 책임 합리적 산정
디지털 금융사기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요국들은 금융회사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피해자 보호 체계가 여전히 미흡해 제도적 대응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KB국민은행 등 일부 은행권이 비대면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 분담 제도를 확대하면서 금융사기 대응력 제고가 기대된다.
3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디지털 금융사기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금융회사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은행권은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 제도나 사전 예방 시스템을 도입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규복 선임연구위원은 ‘결제 사기(Payment fraud)에 대한 주요국 정책 및 시사점: 금융회사 책임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최근 해외에서는 이용자에 의해 승인되지 않은 결제 사기뿐만 아니라 이용자가 직접 승인한 결제 사기에 대해서도 금융회사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우 아직 결제 사기 책임 논의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사기 수법이 고도화되면서 이용자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기 피해를 입었을 때 이용자가 받는 충격이 크다는 점, 금융회사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 피해자의 사기 보고를 통해 사기 관련 통계와 사기 방식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결제사기에 대한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EU,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이용자가 직접 승인한 결제라도 사기에 의한 경우 금융사가 일정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지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영국은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피해에 대해 최대 8만5000파운드까지 금융사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으며 EU도 공공기관 사칭 사기에 대해 금융사가 책임을 지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통신사, 소셜미디어 기업 등에도 사기 예방 및 대응 의무를 부과하는 'Scams Prevention Framework Act'를 제정해 위반 시 매출액의 최대 3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 제도적으로 전자금융거래법과 통신사기환급법에서 제한적으로 금융회사에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은행권에서 이용자가 승인하지 않은 결제에 대하여 자율적으로 손실을 부담하기 시작했지만 이 또한 저조한 상태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접근매체 위변조나 전송·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해킹 등에 의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금융회사가 손해를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용자에게 고의나 중과실이 있거나 금융회사가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대출이나 예적부금 해지시 본인확인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손해를 책임지게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은행권에서는 금융사기 피해 지원과 사전 예방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비대면 금융사고에 대해 은행과 고객 간 책임을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피해 보상을 지원하는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 제도'를 인터넷뱅킹으로 확대했다. 기존에는 영업점에서만 신청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KB국민인증서, 금융인증서, 공동인증서를 통해 인터넷뱅킹에서도 신청이 가능하며,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IBK기업은행은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폰 보안 점검 기능을 갖춘 통합 보안 플랫폼 'i-ONE 가드'를 출시했다. 고객은 'i-ONE백신 서비스', '내 스마트폰 진단 서비스', '안심케어서비스' 등을 통해 보안 위협을 실시간 차단하고 스마트폰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 특히 피싱문자, 전화조작, 위협앱 등을 검사하는 기능은 은행권 최초로 제공되는 서비스다.
은행권이 금융사기 예방과 피해 지원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도적 차원에서 금융회사 책임을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논의도 본격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에 "은행들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지금처럼 자율에만 맡겨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책임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논의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