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덮친 '나니가스키' 열풍 오타쿠 DNA가 깨어났다

일본 오타쿠 문화 취향으로 스며든 한국 "취향 공동체 명암 드러나기 시작했다"

2025-04-27     김현우 기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안철수 의원 유튜브 화면 캡처

"나니가스키?"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 시리즈의 프로젝트 유닛 '아이♡스크림(AiScream)'이 부른 이 짧은 대사가 한국을 휩쓸었다.

'나니가스키'(何が好き)는 '무엇을 좋아해?'라는 뜻이다. 아이♡스크림은 3명의 성우 아이돌이 결성한 애니송 퍼포먼스 그룹. 이들의 데뷔곡 '아이♡스크~림!' 속 서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을 묻고 답하는 장면은 일본 현지 공연장에서 시작해 1년 만에 한일 양국 SNS를 점령했다.

愛♡スクリ~ム! - AiScReam [Asia Tour 2024] (2025). /유튜브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명 '오타쿠' 문화는 한국 거리도 집어 삼켰다. 서울 홍대 앞 2월 24일. AK플라자 5층 굿즈존은 ‘브리치 20주년 기념전’ 광고로 가득했다. 굿즈숍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피규어, 키홀더, 아크릴 스탠드가 진열돼 있었다. 애니송이 흐르는 카페 코스프레 복장의 청년들까지. 홍대는 이제 '홍키하바라'(홍대+아키하바라)로 불린다.

오사카 출신 유리 씨(25)는 “K팝을 보러 왔는데 홍대에서 더 자주 일본 애니송을 듣게 됐다”며 웃었다.

블리치전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 서울 전시 '블리치전'이 개최됐다. /블리치

SNS 시대, 한일 문화 교류 속도는 가속됐다.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일본 내 K팝 팬은 약 1000만명에 달한다. 한국 내 일본 서브컬처 소비 규모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핵심은 '거대 서사의 붕괴'다.

일본은 1970~80년대 고도성장기 이후 국가적 목표를 상실했다. 경제호황과 군국주의 거세 이후 현실은 개인에게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에서 행인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아즈마 히로키 일본 문화평론가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국가와 대의를 잃은 일본 사회에서 오타쿠 문화는 가상의 세계를 보완하는 기능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대 오타쿠는 더 이상 거대한 서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이야기, 취향, 코드 속에서 자신을 소비한다"고 했다.

'기동전사 건담'(1979), '에반게리온'(1995) 같은 작품은 이 시대를 상징한다. 거대 이념 대신 개인 심리에 천착했고, 열광하는 팬 집단은 곧 새로운 공동체가 됐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한 지휘관이 부대 공식 트위터에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한 장면을 따라한 합성 사진. /지구인사이드

한국은 20년 뒤를 따라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했다. 국가주의와 이념의 구속이 약해지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가 열렸다. '에반게리온'을 본 세대가 성장했고 '원피스', '나루토'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1999년 케이블TV 방영을 통해 대중화되면서 오타쿠 문화의 토양이 만들어졌다.

2004년 일본 대중문화 4차 개방은 결정적이었다.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이 한국 사회에 본격 유입됐다. 아즈마 히로키는 "젊은 세대는 한일 대결 구도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문화는 정치를 넘어선다. SNS 시대 이후 문화의 국경은 더 무의미해졌다"고 했다.

지난 2024년 7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AK플라자 홍대에서 열린 연재 30주년 기념 명탐정 코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편견 없이 문화를 받아들이는 세대가 등장했다. 부정적 이미지나 혐오감을 극복하는 대신 자유롭게 교류하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다나카 신드롬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개그맨 다나카(김경욱)는 일본 호스트 캐릭터를 패러디했지만 조롱이나 거부감 없이 환영받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일본 문화를 사랑하는'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젊은 세대에게 친근한 아이콘이 됐다.

개그맨 다나카(김경욱)는 일본 호스트 캐릭터를 패러디했지만 조롱이나 거부감 없이 환영받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일본 문화를 사랑하는'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젊은 세대에게 친근한 아이콘이 됐다. /'나몰라패밀리 핫쇼' 유튜브 채널

일본 오타쿠 문화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급격히 부상했다. 일본 내각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일본 내 히키코모리 인구는 약 146만명으로 이 중 상당수가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 소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즈마 히로키는 "서브컬처는 현실을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실의 좌절을 대면하기보다 가상세계 안에서만 자아를 유지하는 문화적 구조가 이미 일본에 자리잡았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