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8년전 어린이날 받은 선물

[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직장생활 30여 년은 일과 육아의 전쟁 너무 힘들고 싫어서 일찌감치 선언했다 “애 낳으면 엄마가 키워준다!”

2025-05-05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직장생활 30여 년은 그야말로 일과 육아의 전쟁이었다. 지금처럼 어린이집이 많지도 않았고 시어머니나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는 직장 다니기가 힘든 시대였다. ‘경단녀’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 왜 그리 일을 놓으면 안 될 것 같은지···. 애 둘을 끌고 이리저리··· 그야말로 동냥 육아를 하며 일을 하고 애들을 키웠다.

착하고 순하면서 건강하기까지 한 두 딸 덕에 어찌어찌 은퇴를 하고, 그 시절이 너무 힘들고 싫어서 애들에게 일찌감치 선언해 두었다. “애 낳으면 엄마가 키워준다!” 결혼과 직장생활이 뭐 벌 받는 것도 아니고 엄마 혼자 책임질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5월 말이 예정일이었던 딸의 만삭 배를 5월 초쯤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남산만 한 배'였다. 나도 애 둘을 낳았지만 저렇게 불렀을까 싶게 부푼 배를 보며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가 되었다. /이수미

어린이날 하루 전,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 태국 음식점에서 원플러스원 맥주를 한 모금쯤 마셨을 때 왠지 핸드폰이 보고 싶어졌다. 사위의 부재중 전화. ‘뭐지?’ 뭔가 싸한 느낌··· 지하에서 1층까지 어떻게 뛰어올라갔는지 기억도 없다.

“어머니! 양수 터졌대요.”

5시까지 근무를 하고 일어서는 순간, 그 남산만 한 배에서 손주가 나올 채비를 한 것이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딸은 벌써 진통이 시작되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딸의 진통을 보기 힘들다. 30여 년 전, 나의 첫 진통이 시작됐을 때 떠오른 단어가 ‘원죄’였다. 아··· 이것이 출산의 고통이구나···. 역시 대단하신 하나님!

밤 12시를 넘긴 직후 어린이날에 손주가 태어나고, 나는 그렇게 할머니가 되었다. 예상한 일이었어도 느낌까지 예상대로는 아니었다. 손주를 품에 안았을 때 ‘어머··· 이게 웬일이야···.’ 황혼육아 8년 차지만 그 순간은 아직도 어느 별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얼떨떨한 순간이었다. 생일이 어린이날이니 선물 하나는 굳은 셈.

친구들은 지금도 얘기한다. 원플러스원을 원도 없이 못 먹어서 ‘원이 되었다’고···.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