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신약 격전지 'AACR 2025', K바이오 진검승부
저분자부터 항체까지 AACR 무대 선 K-신약 초기 연구로 승부 건다
“HER2, STING, TPD, ADC…”
이 짧은 약어들 속에 국내 항암 신약개발의 방향성과 가능성이 모두 담겨 있다. 25일(현지시간) 개막하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5)에 한국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대거 참가한다. 대웅제약, 한미약품, 셀트리온, 유한양행 등 주요 기업들이 저분자 화합물, 항체 기반 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ADC), 표적단백질분해제(TPD), mRNA 백신 등 다양한 초기 항암 파이프라인을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글로벌 신약개발의 조기 전략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AACR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학회 중 하나다. ASCO나 ESMO가 후기 임상과 상업화를 중점으로 삼는 반면 AACR은 초기 기초연구에 무게를 둔다. ‘연구(Research)’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자연히 신약개발 전주기에 걸친 다양한 후보물질이 대거 쏟아지는 무대이며,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한미약품, 11건 발표…HER2부터 mRNA까지 ‘물량 공세’
이번 AACR에서 가장 두드러진 참여는 단연 한미약품이다. EZH1/2, HER2, MAT2A, SOS1, p53 등 총 7개 타깃, 11건의 비임상 연구 성과를 포스터 발표한다. 이중 HER2 선택적 저해제 ‘HM100714’는 기존 HER2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다양한 HER2 변이에 대응 가능한 범용성을 갖춘 신약후보로 주목받는다. 한미약품은 최근 전략적 관심을 높이고 있는 mRNA 항암 신약도 선보인다. p53을 코딩하는 mRNA 백신과 STING pathway를 자극하는 mRNA 신약이 대표적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번 발표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R&D 협력 가능성도 적극 모색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웅제약·한독·오스코텍, 저분자 항암제의 진화
전통의 저분자 화합물 기반 연구도 AACR의 중심 무대다. 대웅제약은 이번 학회에서 처음 공개하는 3종의 후보물질(DWP216, 217, 223)에 대한 전임상 데이터를 발표한다. 이 중 DWP223은 DNA 복구 유전자 결핍 종양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합성치사 메커니즘 기반 항암제다.
한독은 표적단백질분해제(TPD)를 중심으로 EGFR, KRAS 변이 내성 극복 전략을 선보인다. 오스코텍은 NUAK1/2 이중저해 물질 ‘P4899’와 EP2/4 저해제 ‘OCT-598’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유하며 저분자 화합물로도 면역세포를 간접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항체 기반 신약, 다중항체·이중항체 기술 각축
이중항체와 다중항체 등 차세대 항체 기술도 핵심 트렌드다. 유한양행과 에이비엘바이오가 공동 개발 중인 ‘YH32364(ABL104)’는 EGFR과 T세포 활성 수용체 4-1BB를 동시에 타깃하는 이중항체다. 이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1/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으며 본격 임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은 HER2 타깃 다중항체 ‘CT-P72’의 전임상 데이터를 구두 발표한다. 이 물질은 T세포 인게이저(TCE) 구조를 활용해 HER2 양성 암세포를 T세포와 연결, 면역세포의 종양 살상 기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바이오시밀러 중심에서 신약개발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는 셀트리온의 변화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ADC·TPD·STING…새로운 모달리티, 새로운 판을 짜다
항체약물접합체(ADC)와 TPD는 AACR의 차세대 무기다. 셀트리온제약은 이중 페이로드 ADC 플랫폼 ‘CTPH-02’를 발표한다. 서로 다른 작용기전을 결합해 기존 단일 페이로드의 한계를 넘겠다는 전략이다. ADC 전문기업 피노바이오는 링커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다. 기존 ADC에서 문제가 되던 간질성 폐질환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설계 기술이다.
TPD 기반 항암제도 존재감을 키운다. 한독은 비엔제이바이오파마와 공동으로 TPD 기전을 EGFR 변이 타깃에 적용한 결과를 소개한다. 세포 내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분해하는 방식으로, 기존 표적항암제의 저항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가켐바이오·파로스아이바이오, AI와 면역의 결합
리가켐바이오는 STING(Stimulator of Interferon Genes) 작용제를 기반으로 한 LCB39의 임상 데이터를 발표한다. 기존 STING 작용제는 부작용 문제로 개발이 중단된 사례가 많았지만, 구조 최적화를 통해 면역자극 효능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AI 기반 신약개발 기업 파로스아이바이오도 전임상 데이터를 발표하며 PHI-501이라는 신규 항암 물질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Trop2를 타깃하는 압타머 항암제 AST-203을 개발 중인 압타머사이언스도 전임상 데이터를 AACR에서 공유할 예정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저분자 화합물에서 mRNA, 이중항체, ADC, TPD까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다루는 파이프라인의 범위는 과거와 비교해 현격히 넓어졌다"면서 "여전히 대부분은 전임상 단계이고 상업화까지 갈 길이 멀지만 기초 연구단계에서 글로벌 무대와 호흡하며 임상, 라이선스 아웃, 협업까지 연계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움직임은 뚜렷하다"고 했다.
이어 "‘암 정복’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가장 앞단에서 뛰고 있는 건 이제 단지 미국과 유럽의 빅파마들만은 아니다. K-바이오 역시 이제 진검승부를 시작하고 있다. AACR 2025가 주목받는 이유"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