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무의 감탄 맛집] 간짜장에 계란 프라이가 없고 그라믄 안돼~
70여년 노포 부산 '옥생관' 불맛 진하고 쫄깃한 식감 영화 '바람' 촬영지로 유명
| 전국에 있는 맛집을 드나드는 남자의 후기다. 유명한 곳도, 숨겨진 곳도 간다. 재료와 요리가 탁월하면 선별한다. 주인장이 친절하면 플러스다. 내돈내산이며 가끔 술도 곁들인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입에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 들어가야 정화된다고 믿는다. [편집자 주] |
부산에 머문 건 4월 초 짧은 일정이었다. 봄날 하늘은 맑았고 벚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남포동 인근의 숙소에서 나와 이 지역 유명 식당에 가겠다는 생각에 거리를 나섰다. 마침 걸어서 10분 거리인 부평동에 부산 3대 중국집으로 꼽히는 '옥생관'이 있어 그리로 향했다.
1951년에 개업해 70여 년 역사가 있는 2층집이다. 오후 1시쯤 안으로 들어서니 웨이팅은 면했다. 노포 특유의 기름 냄새가 먼저 코에 닿았다. 1층 빈자리에 앉았다.
간짜장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혼자 와서 그런 기분이었다. 목표했던 일을 완수해서 자축하고 싶을 때, 소주 한 병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고개를 끄덕일지도.
주방 쪽이 분주해 보였다. 이내 간짜장이 나왔다. 검게 윤이 나는 춘장 소스가 따로 담겼고 양파와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면 위로는 사방으로 튀겨진 계란 프라이가 하나, 채 썬 오이가 올려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완두콩은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
젓가락을 들어 소스를 비볐다. 면은 가는 편. 입에 들어가는 소리는 '후루룩'이 아닌 '후룩'이다. 일반 짜장과 다르게 물과 전분이 없어서 더 쫄깃하게 씹힌다. 맛은 진하다. 불맛이 감돈다.
평소 먹어본 간짜장보다 맛있다. 대식가였으면 한 그릇 더 시켰을 거다. 역시 먼 길 온 보람이 있다. 수도권에서는 안 주는 계란 프라이도 베어 문다. 노른자가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익었고 고소하다. 부산 사람의 정이, 이 오랜 식당의 자부심이 입에 느껴진다. 누군가 같이 왔으면 탕수육도 추가했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대선' 소주병을 땄다. 타 브랜드만 먹다가 부산에 올 때는 이걸 즐긴다. 조기 대선이 펼쳐지는 정국에 마시는 대선이다. 간짜장의 텁텁함을 메운다. 술잔을 목으로 넘길 때, 안에서 뭔가가 스르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간 쌓아왔던 피로나 쓸쓸함 같은 것들이 술기운에 휩쓸려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했다. 대신 상남자의 기운이 채워진다.
부산이라고 하면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답게 지역 식당이 영화와 관련이 있다. 옥생관은 2009년 개봉한 '바람의 촬영지다. 벽 한 켠에 영화 장면이 액자로 붙어있다. '올드보이'의 군만두 촬영지는 부산역 인근 차이나타운에 있다.
영화 바람은 '비공식 1000만 영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개봉 당시 성적은 낮지만,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부산 남고생들이 나오는 우정 영화다. 주인공이 써클에 가입해 짜장면 회식을 한 현장에 와본 것이다.
짭조름한 간짜장을 한 입 넣고, 소주를 털어 넣는 그 조합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음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의 공기와 온도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바람을 생각하며 부산 사나이의 열정을 되새긴다. 영화 명대사는 사투리 억양을 살려서 말하는 "그라믄 안 돼~"다. 방황하는 청춘이 잘못된 길로 가면 부산 형님이 투박하게 제지하는 거다. 따르면 맞는 길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 계산하고 나왔다. 그 한 끼가, 그리고 그 한 병의 술이, 긴장을 풀게 해준 것이다. 외지에서 급하게 잡아서 온 출장인데 마침 좋아하는 영화 촬영지에 왔고 음식도 만족이다. 기분 좋은 우연이다. 서울역으로 올라와서도 다시 생각난 맛집이다.
그날의 간짜장 맛은 기억에서 사라져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게 된 계기와, 그때 불어온 남쪽 지방의 봄바람만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