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오사카 엑스포, 배려 외치면서 차별만 전시했다

“기술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장애인·고령자에겐 먼 미래 ‘배리어프리’는 아직 전시 중

2025-04-21     김현우 기자
지난 15일 오사카 엑스포 입장을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여성경제신문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

2025년 4월 13일 개막한, 일본이 55년 만에 개최한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공식 슬로건이다. 그런데 개막 첫날 현장을 찾은 장애인과 고령자들에게 미래는 여전히 너무 멀게 느껴졌다. 생명이 빛나기엔 발 디딜 곳부터 어두웠다.

입구부터 ‘경사’, 시작부터 ‘차별’이 난무했다. 휠체어를 탄 60대 여성 A씨는 개막 첫날 벚꽃이 흩날리는 입구 앞에서 당황했다. “경사로가 너무 급했다. 비가 오면 미끄러질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입구 표지판은 대부분 높은 위치에 설치돼 있었고 작은 글씨는 고령자나 저시력자에게 전혀 읽히지 않았다.

B씨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최첨단 음성 안내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어 있다는 설명은 있었지만 “정작 어디서 켜야 할지 어떤 언어로 작동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점자 블록은 주요 동선마다 일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끊기거나 이정표와 연결되지 않아 길을 잃기 쉬웠다.

14일 오사카 엑스포에 참석하기 위해 주최 측에서 제공한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을 시도하는 B씨. 하지만 복잡한 인증 절차 등 불편으로 인해 쉽게 등록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스태프들은 분주했고, 장애인 보조를 맡은 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70대 남성 C씨는 평소에도 활동적인 편이다. 하지만 엑스포장에서 3시간 남짓 돌아다닌 후엔 숨을 몰아쉬었다. “생각보다 너무 넓고 복잡했다. 지도가 이해가 안 되고 중간에 쉴 곳이 너무 적었다” 고령자용 휴게 공간은 존재했지만 대기 줄이 길었고 실내엔 의자보다 ‘홍보 배너’가 많았다.

엑스포 내 전동카트나 수동 휠체어 대여소도 한계가 보였다. 수량이 한정돼 있었다. 대여 시 ‘스마트폰 예약’이 필수였고 이를 못 하는 고령자는 줄을 서서 현장 등록을 해야 했다. 무더위가 시작된 날씨 속에서 대기 시간은 40분을 넘기기도 했다.

엑스포 현장 난간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는 없고 화살표로 표시된 스티커만 존재했다. /여성경제신문

이번 엑스포의 핵심 중 하나는 AI 기반의 자율주행 로봇 ‘AI 슈트케이스’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이 로봇을 따라가면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안내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의 실사용 보고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전용 앱 설치 후 개인 정보 등록과 복잡한 초기 세팅이 필요하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기술의 진보는 반가웠지만 실질적인 접근성은 일반인 수준 이상을 요구했다.

일본 장애인단체 ‘배리어프리 네트워크 간사이’의 한 관계자는 “화려한 기술을 과시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배려가 아직도 부족하다”며 “음성지원, 휠체어 진입구, 휴게소 구조 하나하나가 여전히 엑스포의 ‘배리어(장벽)’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주최 측에서 제공한 길 안내 페이지. 길목에 배치된 구역의 상세한 이름은 없고 큰길 위주의 안내만 제공된다. 고령층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경제신문

오사카 엑스포는 2025년 10월까지 약 6개월간 진행되며 150개국 28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최 측은 공식 자료를 통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간”을 강조했지만 초기 현장 반응은 그와 거리가 있었다.

니시야마 준 도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이 전통적으로 보여온 ‘형식적 배리어프리’의 한계가 다시 드러난 셈”이라며 “전시장의 ‘보여주기식 기술’보다 불편한 현실을 직접 겪는 이들의 동선 분석과 정책 반영이 먼저”라고 했다.

엑스포는 국가의 비전을 세계에 선보이는 무대다. ‘모두를 위한 미래’를 말하면서도 정작 모두가 그 미래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면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장애인과 고령자에게 미래란 단지 기술의 혁신이 아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