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눈물이 멈추지 않던 손자의 다례 시연

[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손자와 함께 나눈 8년을 돌아보며

2025-04-25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손자가 3년을 다닌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다도를 가르쳤다. 요즘은 차 마시는 사람이 드물어져 노인들이나 하는 걸로 알던 다도를 가르친다니 할미로서는 내심 반가웠으나 한 달에 한 번씩 한복을 입고 가는 걸 손주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옷이 불편한 건 뻔한 일이고 수업이 끝나면 갈아입을 옷을 들고 가는 일도 번거로워했다. 여자아이들은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선녀풍 한복을 입고 댕기 머리에 조바위까지 쓰면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한 낯빛이건만···.

한복을 입혀 등원시키는 날은 아침부터 전쟁이었다.
“꼭 입고 가야 돼?”
“바지는 안 입으면 안 돼?”
입술이 한주먹이 나와서 이런 트집 저런 트집을 잡는 통에 등원 차에 오르면 진이 다 빠져버린다.

차가 너무 맛있어. 다례 시연장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손자가 할머니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이수미

졸업을 한 달여쯤 앞둔 때, 3년 배운 다도를 시연한다는 초대장을 들고 왔다. 드레스 코드는 한복. 엄마 스무 몇 명에 끼여 백발 할미 한 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혼자 할미인 것도 신경 쓰이지만 한복도 없고···. 이래저래 궁리하다 생활 한복을 한 벌 샀다. 이십여 년 만에 입어보는 한복이 왠지 신나고 문득 결혼 때 장만했던 빨강 치마 노랑 저고리도 생각이 난다.

아주 추운 날이었다. 머리는 백발, 한복에 롱패딩, 신발은 털부츠, 게다가 운전하고 가려니 ‘이것이야말로 퓨전이 아닌가···, 웃음도 난다. 시연장은 선생님들이 애를 많이 쓰셨는지 각 상에 다기와 차 수건이 예쁘게도 놓여있다. 화려한 한복의 엄마들이 다 모이자 아이들이 줄줄이 들어와 엄마 앞에 앉는다. 젊은 엄마들은 왠지 신나 보이고 미용실을 다녀왔는지 올림머리에 메이크업까지 황혼육아 할머니를 주눅 들게 한다.

손자의 머리꼭지가 보일 때부터 왠지 눈물이 흘러 멈추질 않는다. 아이는 “할머니, 왜 우는 거야?” 자꾸 묻지만 나도 모르게 줄줄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을 따르고 차를 우리고 뚜껑을 닫고 노란 차를 따라 할미 앞으로 내민다. 

핏덩이를 데려다가 7년을 키우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기쁘면서 남모르게 아쉬운 날, 안고 업고 울고 웃으며 지낸 날들이 영화처럼 뇌리를 스친다.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뭔가 남겨둬야 하겠다는 절박함이 들기도 한 다례 시연. 황혼육아 최대 적은 체력이 아니라 눈물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