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푸른 물을 되찾은 청계천
[손웅익의 건축 마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에서 물고기와 새들의 삶의 터전으로
청계천은 서울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사진을 보면 천변으로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나무 기둥은 하천 바닥에 고정하고 집은 공중에 떠 있는 소위 필로티 구조로 지었다. 하천은 국가 소유이기도 하지만, 오수처리에도 편리하므로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터를 잡기 좋았을 것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야 어찌 짐작할 수 있겠냐마는 그 판잣집들이 자꾸 조형적으로 보이는 것이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1958년부터 복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서울 외곽으로 강제로 이주당하게 된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로 이주당하게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히 큰 고통이다. 청계천 변의 판잣집을 다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청계 고가도로를 만들었다. 통상 3.1고가도로라고 불렀다. 지금 관철동에 서 있는 삼일빌딩은 1970년에 완공되었고 바로 앞 청계2가 교차로가 청계고가도로의 시점이자 종점이었다.
31층 높이인 삼일빌딩은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인데 건설 당시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스카이라운지에 자주 찾아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스카이라운지에서의 경관을 상상해 보면 동쪽으로는 세운상가와 3.1고가도로를 내달리는 차량의 행렬, 남쪽으로는 남산과 명동, 서쪽은 덕수궁과 시청 일대, 북측으로는 북악산과 경복궁, 창덕궁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아마도 야간 경관이 더 멋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일빌딩이 준공되던 1970년에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가 일어난다. 준공된 지 불과 4개월밖에 안 된 아파트였다. 당시 서울시장은 김현옥이었는데, 그는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돌격’이라는 구호를 크게 쓴 안전모를 쓰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김중업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사실상 부실 공사를 부추기고 방치한 김현옥 시장을 강하게 비판했고,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지목되어 이듬해 파리로 추방된다.
김중업은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지만 건축가 김수근은 정권 실세와 관계가 좋았던 모양이다. 김수근이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세운상가를 설계했을 때가 35세였다. 김중업이 파리에서 낭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김수근은 굵직한 프로젝트를 많이 설계했고 거기서 번 돈으로 공간 사옥을 지어서 입주했다. 김중업은 1979년 10.26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귀국할 수 있었으니 정권에 바른 소리를 한 결과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고 할 수 있다.
청계천을 복개해서 만든 청계고가도로는 1990년대 들어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전면 철거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나니 다리가 많이 필요해졌고 지금 청계천에 있는 다리는 22개라고 한다. 예상보다 많은 것 같아 찾아보니 한강 다리는 32개나 된다.
장충단공원 안에 있는 작은 하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화강석으로 만든 다리가 하나 나온다. 그 중후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이 공원의 멋을 더한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어야 할 수표교라고 하는 청계천의 수위를 재던 다리다. 과거 청계천 수표교가 있던 자리에는 나무다리를 만들었고 수표교가 있던 자리라는 팻말을 붙여두었다.
나무로 만든 그 다리의 모양이 허접하고 흉해서 다리 밑으로 지나다닐 때마다 괴롭다. 석재로 된 수표교를 나무로 만든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 형상이 원본과 달리 허접하고 못생겼다. 이렇게 만들 바에야 철거하고 그냥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의 사진을 안내판에 붙여두는 것이 좋겠다.
수표교는 조선의 제19대 임금인 숙종이 장옥정(희빈 장씨)을 만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숙종이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남산 아래 영희전으로 가던 중 수표교를 지날 때 여염집 문밖으로 얼굴을 내민 장옥정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는 이야기다. 장옥정이 그렇게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고 왕비가 되고 사약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임금이 지나가는 데 목숨 걸고 얼굴을 쏙 내밀 정도로 위험한 여자였음이 틀림없다.
조선시대 임금을 망친 꽃뱀이 살던 청계천은 현대에 이르러 대통령을 배출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청계천의 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물고기가 살고 새가 날아드는 맑은 물이 삭막한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