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인정한 독일, ‘원전 복귀’ 준비···韓 탈원전 주역들은 나 몰라라
메르켈에 밀렸던 메르츠, 獨총선 승리 사민당의 탈원전 정책 추진 비판 이력 탈원전 재검토, 원자력·신재생 병행 전략
‘라인강의 기적’으로 빛나던 경제가 급격한 침체에 들어선 건 메르켈과 숄츠 전 총리의 에너지 정책 실패에서 기인했다는 독일 내부의 각성이 정권심판을 불러왔다. 독일에선 반성이 봇물이지만 그 정책을 베낀 한국 탈원전 주역들은 침묵 뒤로 숨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그 후계를 자처하던 올라프 숄츠 정권이 추진한 에너지 정책이 완벽히 실패했다는 여론이 독일 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최근 정권 심판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23일(현지시각) 독일의 연방의회 총선에서는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정권 교체를 이뤘다.
5명 중 4명이 투표할 만큼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총선은 단순한 진보와 보수 진영간 싸움이라기보단 에너지 주권 확보에 실패한 과거 정권에 대한 ‘심판 투표’ 성격이 강했다는 해석이 강하다.
과거 당에서 메르츠를 밀어내고 독일의 총리가 된 메르켈은 2011년 강화된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고 2022년까지 원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목표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1년 늦춰졌지만 2023년 후임 올라프 숄츠 총리 체제에서 결국 달성됐다.
메르켈과 숄츠는 탈원전과 탈탄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한편 신재생에너지와 가스 화력을 확대했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기반시설 확대 속도도 느려 이것만으로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화학, 자동차 등 제조업들은 독일 내 생산을 계속하려면 막대한 불리함을 감수해야 했다“며 “부담스런 에너지 비용이 가계는 물론 기업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결과는 독일 제조업 기반의 급속한 약화와 산업 공동화였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은 최근 창사 이래 처음 독일 내 10개 공장중 3곳을 폐쇄하기로 했다가 노조의 반발에 극적으로 철회했다. 대신 2030년까지 3만5000개 일자리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된데다 에너지 비용 상승이 추가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현재 프랑스로부터 전력 공급이 없으면 메르세데스, BMW 등이 몰려 있는 독일 남부 공업지대 가동을 중단해야할 상황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북부지역의 풍력으로 인한 것이 많지만 북에서 남으로 송전할 기반 시설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이것만으로 남부 전력 수요량을 충족할 수 없다.
한 고위 소식통은 여성경제신문에 “독일은 이웃나라이자 EU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와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이슈는 바로 에너지 문제”라며 “독일 제조기업 대다수는 러-우 전쟁, 생성형 AI의 확산 등 미래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한 현실적 고민과 대책 없이 탈원전을 단행한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독일 내 국민 여론은 매우 명확하다. DPA 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 독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원자력발전 부활에 찬성했고 찬성 응답자의 32%는 기존에 폐쇄한 원전을 재가동하는 방안과 새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모두 지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수석경제보좌관을 10년이나 지낸 최측근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에너지 정책 실패를 시인한 바 있다. 그는 “탈원전 결정 후 러시아 가스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당연히 달리 행동했을 것”이라고 패착을 인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메르츠는 취임 이후 독일의 에너지 위기 정상화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메르켈의 탈원전 구상과 숄츠의 탈원전 이행을 꾸준히 비판해 왔던 그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도 탈원전을 재검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들은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올라프 숄츠 총리의 탈원전 정책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메르츠가 속한 CDU·CSU의 의원들은 지난해 하반기 폐쇄된 원전을 재가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촉구하고 있다.
독일을 에너지 강국 벤치마킹으로 삼아 탈원전을 추진해온 한국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간헐성, 변동성이라는 태양광과 풍력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폭등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량은 34%나 확대했으며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물가 급등, 저성장 고착화도 탈원전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전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위기를 전후로 한 2021∼2023년 원가 밑 가격으로 전기를 팔아 43조원대의 누적 적자를 떠안은 상태다. 지난해 말 한전의 연결 기준 총부채는 전년보다 2조7310억원 증가한 205조1810억원으로 집계돼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원자력계 원로는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교조주의에 빠져 원전 대비 발전비용이 무려 8배나 달하는 태양광, 풍력에 5년간 4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었다”며 “그 결과 급전 조달을 위해 쏟아내는 한전채가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것을 넘어 산업계도 연쇄 타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