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세의 실버타운 탐방기] 3.공주원로원 ②입주민 인터뷰-미국 성공신화를 뒤로하고 공주의 작은 실버타운을 선택한 부부 이야기

럭셔리 수도권 실버타운 아닌 공주원로원 택해 건강이 나빠져도 부부가 헤어질 일 없어서 좋아 욕심 내려놓고 신앙으로 사는 진정한 행복 전도사

2025-04-18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실버타운 탐방기를 시작하며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 책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최세용 장로와 최옥자 권사 부부의 다정한 모습 /이한세 객원기자

공주원로원
처음 이름만 들으면 소박하고 평범한 시골 실버타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부부가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곳에서 만난 최세용 장로와 최옥자 권사 부부는 남들이 꿈꾸는 미국 이민 성공의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신앙의 끌림으로 공주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왜 이 부부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부러운 미국의 삶을 뒤로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미국, 성공의 무대가 되다

최세용 장로와 최옥자 권사는 1946년생 80세 동갑내기 부부다. 1979년 부산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치열한 학부모 경쟁 속에 숨이 막힐 듯한 일상을 보내던 중 부부는 미국 이민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국행을 결정하자마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30대 초반의 최 장로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던 당시 같은 병원에 미국인 의사가 있었다. 이 의사가 최 장로의 성실함과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친구가 과장으로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병원에 취업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준 것이다. 결국 미국 땅을 밟기도 전에 일자리가 먼저 생긴 셈이니 하늘이 도운 것이다.

최 장로는 처음에는 병원에서 월급을 받으며 근무했지만 성실하고 친절하게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에 점점 신뢰가 쌓였고 환자들도 꾸준히 늘었다. 결국 몇 년 만에 자신의 물리치료 센터를 열 수 있었고 교포 사회는 물론 현지 미국인들까지 찾는 단골이 생기면서 사업은 번창했다.

최세용 장로는 단순히 물리치료 센터만 운영하는 의료인만은 아니었다. 환자를 돌보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쓰며 내면을 가꾸던 그는 만 60세가 되던 해인 2006년 시집 <공심원의 비밀>을 출간했다. 미국 출판사를 통해 선보인 이 시집은 그의 삶과 자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어 교포 사회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최세용 장로의 시집 '동심원의 비밀', 2006년 /신우미디어

70대 중반까지 최 장로는 왕성하게 일했다. 환자들의 신뢰는 여전했고 "원장님, 계속 일해 주세요" 하는 말에 힘을 얻으며 물리치료 센터를 지켰다. 건강했고 사업도 탄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기치 않은 손님, 팬데믹과 인지장애

그러나 2019년 은퇴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듬해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팬데믹은 최세용 부부의 삶에도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겼다. 이동이 제한되면서 손주들과의 만남이 끊겼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활력을 얻던 일상이 사라졌다. 늘 환하게 웃으며 사람 만나는 걸 즐기던 최 장로는 점차 조용해지고 외로움이 깊어졌다.

"팬데믹이 닥치면서 외출도 어렵고 사람을 못 만나니까 마음이 점점 허전해지더라고요."

최 장로의 아내인 최옥자 권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팬데믹은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게 했다. 남편의 건강에도 서서히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지 기능이 둔해지며 말이 어눌해졌고 최 권사는 남편의 달라진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남편이 점점 웃음을 잃어가더라고요. 늘 활기차던 사람이었는데… 그때쯤부터 초기 인지장애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풍족한 삶도, 성공도 사랑하는 사람의 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부부는 성공 이후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깊이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 마지막 보금자리

“남편이 건강상 문제로 운전을 못하게 되니까 제가 혼자 다 해야 했어요. 그런데 미국은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어디든 차로 이동해야 하잖아요. 모든 짐이 제 어깨로 쏠리는 것 같았어요.”

미국에서의 생활은 운전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는 일상적인 일조차 자동차 없이는 힘들었고 모든 부담이 최 권사에게 쏠렸다. 미국 생활의 불편함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오면서 최옥자 권사의 마음속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한국에 여행하듯 잠깐씩 다녀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아프고 제가 혼자 생활을 감당하면서 그냥 잠시의 여행이 아니라 한국에서 제대로 1년쯤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는 독립된 주거형태가 최선이 아니었다. 부부가 함께 식사와 건강 관리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실버타운이라는 선택지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한국 어디에서 지낼까 고민하다 보니 실버타운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제일 잘 맞더라고요.”

공주원로원, 신앙의 끌림이 이끈 선택

한국에 장기 체류를 결정한 부부는 본격적으로 실버타운을 찾기 시작했다. 부부는 강원도를 비롯해 부산까지 발품을 팔았고 통일교나 원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들도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 어디나 시설은 훌륭했지만 물리적인 조건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머물 곳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불편하면 못 살아요. 공주원로원은 시설이 조금 소박할 수 있지만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좋아요. 집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만 타면 바로 교회로 내려갈 수 있어요. 매일 새벽 예배도 드릴 수 있고 식사는 하루 세 번 따뜻하게 나오지요. 그리고 지인이 오면 공주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어요.”

공주원로원에 있는 교회 /이한세 객원기자

최 권사는 이곳 생활의 만족감을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이미 미국에서 궁궐 같은 집, 대형차, 풍족한 생활을 충분히 경험했던 부부에게 이제 더 이상 물질은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크고 화려한 공간보다는 신앙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부가 찾던 삶이었다.

서로 곁을 지키는 삶, 함께하는 마지막까지

공주원로원의 가장 큰 장점은 부부가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버타운과 요양원, 주간 보호센터가 한 공간 안에 있어 남편이나 아내 중 한 사람의 건강이 악화하더라도 서로 떨어져 지낼 필요가 없다. 혹시 몸이 불편해져 요양원으로 옮기게 되더라도 복도 하나만 지나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손을 잡고 정원 산책을 나서는 평범한 일상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부부 중 한 명이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같이 살던 부부 중 한 명이 요양원으로 가더라도 언제든 함께 산책하고 예배도 드릴 수 있어요.”

미국에서는 요양시설과 일반 거주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부부라도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주원로원에서는 그런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설혹 남편이 나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도 곁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특히 이곳은 단순한 실버타운이 아니었다. 장로교 재단이 운영하는 곳으로 직원 모두가 신앙 안에서 입주민을 섬기며 입주민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었다. 수익을 내기 위한 운영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부부의 마음을 깊이 움직였다. 그 속에서 노년의 일상은 단순히 특정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여긴 이익을 내자고 운영하는 실버타운이 아니에요. 오정호 대표님이 직원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시며 입주민을 가족처럼 챙기세요.”

최 권사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공주원로원만의 따뜻한 분위기를 전했다. 오 대표와 실버타운 원장이 입주민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일상과 마음을 가까이에서 살핀다는 것은 다른 실버타운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1층 로비에서 최세용 장로 부부, 오정호 대표와 임영희 담임목사 /이한세 객원기자

물질을 넘어, 신앙 속에서 찾은 진짜 행복

미국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고 넉넉한 집과 충분한 재산도 갖추었지만 최세용 장로와 최옥자 권사 부부에게 있어 물질은 더 이상 삶의 기준이 아니었다. 

“물질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이곳에서 하나님 말씀 들으며 남편과 하루하루 사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인터뷰 말미, 최 권사는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사람이 나이 들면 결국 먹고 자는 게 가장 중요해요. 여긴 그 기본이 정말 잘 되어 있어요. 저희도 이곳에 와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마음도 평안해졌어요.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나를 성숙시키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우린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겁니다. 더 바랄 것도 없어요.”

기자의 손을 꼭 잡고 감사를 표하는 최세용 장로./이한세 객원기자

여성경제신문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교수 justin.lee@spireresea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