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5) "중산층 노인 갈 곳 없다"···시니어 주거 해법 찾으려 각계 모였다
10일 시니어 주거 전략 토론회 개최 제도 개선과 중산층 모델 확보 요구 통합형·도심형 주거 전략 필요성 제기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고령층 주거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공급 확대를 넘어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제도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10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은퇴자가 온다! 초고령사회 대비 시니어 주거 혁신전략 토론회’에서는 ‘한국형 은퇴자 마을(K-CCRC)’을 중심으로 시니어 하우징 정책의 현실과 대안을 짚는 논의가 이어졌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과 한국시니어하우징협회 출범준비위원회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급의 양적 확대보다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실효적 모델 마련과 제도 정비 필요성에 대해 공감이 이뤄졌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시니어 주거의 개념 정립과 더불어 공공·민간의 역할 구분, 제도와 세제 개선, 실현 가능한 운영모델, 중산층 수요 대응 필요성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장(전 더클래스500 사장)은 “시니어 하우징은 돌봄과 건강, 사회적 연결이 통합된 복합 공간으로 기존 주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재 시장은 공공 지원의 부족과 수익성 중심 개발, 사회적 공감대 미흡으로 공급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저소득층 대상 복지시설과 고소득층 중심 프리미엄 하우징 위주로 양극화돼 중산층을 위한 선택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법적 지위가 모호한 시니어 하우징은 다양한 인허가와 규제에 묶여 세제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민간임대주택 수준의 세제 감면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운영 역량 없이 시장에 진입한 무경험 사업자들이 서비스 품질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며 “공공이 인증한 전문 운영사 체계와 운영 자격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시니어 하우징은 단순 공급이 아닌 장기 운영이 핵심이며 이를 위한 금융·정책적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광재 한국주거학회장은 “시니어 주거는 단순 주택이 아닌 돌봄과 서비스가 결합된 복합 상품이다. 복지부는 돌봄, 국토부는 주거를 담당하는 만큼 두 부처 협업이 필수”라며 “현재 고소득층과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중간계층을 놓치고 있으며 도시 내 적정 토지 확보와 폐교·빈집 활용, 용적률 혜택 등을 통해 중산층 대상 시니어 주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사례처럼 40~50세대 소규모 단지 중심의 운영 지속 모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공이익 관점의 도시 재구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측 발표자로 나선 허경민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은 “정부는 실버스테이를 중산층 대상 시니어 주거 모델로 육성 중이며 LH 택지 공급, 주택도시기금 융자, 보증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며 “요양등급을 받아도 거주가 가능하도록 설계했고 혼합형 세대단지와 분양·임대 혼합 모델 등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은퇴자마을법이 통과되면 커뮤니티와 이동 인프라 반영 계획도 구체화할 것”이라고 했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은 “가속 노화를 막기 위해선 개인 역량뿐 아니라 도시와 커뮤니티가 함께 뒷받침해야 한다. 이동과 운동은 하나이며 고령자 이동성이 곧 생존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의료·교통 인프라가 갖춰진 도심 중심의 K-CCRC가 필요하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관계 기반 커뮤니티 설계가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이미홍 LH토지주택연구원 실장은 “은퇴자마을은 2020년 단양에서 수요 부족과 의료 인프라 미비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며 “노인의 70~80%는 자택에서 노후를 보내길 원하는 AIP(Aging In Place) 수요여서 입지 선정 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지 규모 확대 없이는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으며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으로 소비자도 일정 수준 부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이 실장은 “단순 주거를 넘어 지역 활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대학 부지를 활용한 UBRC(대학 기반 은퇴자 커뮤니티)도 가능하며 민간 운영사의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현재 민간의 상당수는 중산층보다 상위 8분위 이상의 하이엔드 모델에 집중돼 있어 공공 지원과 중산층 수요 연계 방안이 함께 모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는 “시니어 주거는 이제 ‘플랫폼형’ 모델로 전환돼야 한다. 복지, 기술, 도시계획이 통합된 시스템이 필요하며 단순한 시설 중심 복지에서 벗어나 지역 기반 주거·의료·커뮤니티가 연결돼야 한다”며 “일본처럼 운영 콘텐츠의 전문성과 오퍼레이터 역량이 관건이다. 공공은 제도를, 민간은 다양성을 맡아 함께 성장해야 한다. 단순한 개발보다 건강수명 연장을 중심에 둔 주거 생태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개회사를 맡은 엄태영 의원은 “초고령사회에서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며 “한국형 은퇴자 마을의 개념 정립과 실천 전략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