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여행, 친구 : 잔잔하다
[윤마디의 유니폼] 도시도, 사람도 스며드는 여행 함께할수록 잔잔해지는 친구
교토 마지막 날 밤. 친구와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나는 오사카로, 친구는 키린지 공연이 열리는 가나자와로 떠난다. 오픈 일정이면 가나자와도 같이 가자고 친구는 꼬셨지만 나는 예상에 없던 여행이라 돈을 너무 많이 썼으므로 어서 집으로….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눈을 감으면 집 생각이 난다. 노곤한 날갯죽지가 가라앉는 그 기분.
교토에 온 첫날 갔던 1300년 된 사찰 기요미즈데라(청수사)와 천황이 살았다던 교토 고쇼(京都御所)가 어느새 오래전 일 같다. 그다음 이틀 동안은 반짝이는 상점 안에서 말차 다도와 팥 퐁뒤를 찍어 먹고, 진한 나무 기둥이 멋스러운 이층 가옥에서 터키색 블루보틀 커피를 마셨더니 이게 천년의 역사가 이 도시에 스며든 모습이구나 싶다.
살면서 일본은 늘 가까이 있었지만 일본의 두 수도에 와서야 제대로 일본을 본 것 같다. 일본의 중심에 와 본 적도 없으면서 일본을 책으로, 영화로, 뉴스로 보고선 일본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아니라 여기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일본을 기억할 것 같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리솔 교토 가와라마치 산조'로 ‘교토시 야쿠쇼마에 역'- ‘가와라마치 역'을 잇는 중심 거리 중간 지점에 있다. 중심 거리 1층엔 빠르게 먹고 갈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통창의 베이커리와 문 열고 장사하는 주전부리 가게, 기념품 샵과 쇼룸이 있고 전구가 빼곡한 유리창 쇼핑몰도 7~8층이다. 아담한 번화가 보도를 따라 낮은 지붕이 이어진다. 지붕 아래에서 “교토에 왜 이제야 왔지!”라는 표정의 관광객들과 어깨를 비끼며 걷다 보면 낮은 지붕이 이어주는 좁은 골목 안으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 대로에서 가장 큰 쇼핑몰, 유니클로가 있는 7층짜리 쇼핑몰 맞은편에 이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큰길 쪽에 입구가 있지 않고 한 골목을 꺾어 대나무 창틀로 가벽을 세운 좁은 통로를 걸어들어오게 해서 구석에 검은색 자동문을 두었다. 바깥의 반짝이고 들뜬 파티에서 완전히 숨어든 나만의 방 같은 호텔.
일본의 숙소는 방도 침대도 하나같이 작고 좁다. 침대 옆 공간이라고는 1인용 탁자와 의자 한 개를 빼면 한 사람 서 있을 면적이 전부. 둘이 움직이려면 한 사람이 벽에 등을 붙이고 비켜줘야 한다. 번갈아서 샤워를 마치고 머리도 다 말리고 이제 끄읕~!하고 나란히 누워있다가, 이 방에서 지내는 사흘 동안 매일 한밤중에 들어오는 바람에 뷰를 한 번도 못 봤다 싶어 일어나서 창호지를 붙인 덧문을 드르륵 열었다.
자정이 다 되어 상점도 인파도 불 꺼진 관광도시에서 유니클로만이 빈 쇼룸에 불을 켜놓았다. 그 불빛이 맞은편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
여행 내내 꼭 붙어서 걷느라 친구의 모습은 사진 찍고 '잘 나왔냐' 검사할 때나 봤던 것 같다. 일본 여자들은 왜 전부 앞머리를 내리고 단발이냐고 묻는 그녀의 긴 곱슬머리. 맞춘 듯이 167에 55kg 똑 닮은 우리 체격. 그 나라 여자들과 다르게 향수도 안 뿌리고 네일아트도 하지 않아 눈길을 끌지 않는 담백한 성격.
이집트에서는 만난 적 없이 한국에 와서 인연이 된 사람. 지난 코로나 팬데믹 몇 년간 그 친구는 파리에 나는 한국에 갇혀서, 어디에도 없던 마음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다정한 안부 인사에 문득 어디에나 있는 마음을 느꼈을 때쯤, 그러면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때쯤, 일본에 온다는 소식에 충동적으로 너를 만나러 온 나.
추운 듯 따뜻한 듯 헷갈리는 교토의 초겨울 날씨에 종일 멋 부린 옷을 입다 벗다 하다가 후줄근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밤이 우리 위로 내려앉았다.
이불 덮은 우리의 모습이, 도쿄 오는 비행기에서 보고 놀랐던- 산골짜기 무늬의 우리나라 국토와는 다르게 잔잔한 대지를 닮았다. 어느새 그 땅을 닮아 잔잔해진 우리 몸 위로 창호 살 그림자가 굴곡지어 드리운다.
자유롭게 살다가, 이렇게 언제 다시 만나자고.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