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불황보단 탈원전 리스크가 낫다”···‘원전 뚝심’ 지킨 건설사들
6월 대선서 민주당이 정권 잡아도 원전시장 성장세 지속될 거라 판단 현대·삼성·대우·DL이앤씨, SMR 투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면서 친원전을 필두로 한 에너지 정책에 변화가 예상되지만 국내 건설사들의 원전 사업 포트폴리오는 흔들림 없이 추진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인공지능(AI) 시대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미래 현실을 고려할 때 글로벌 원전 시장의 성장세가 국내 정치적 격변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형원전 사업,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 대한 투자와 역량 확보에 나서겠다는 국내 건설사들의 기조는 탄핵 정국에 관계없이 계속될 예정이다.
국내 주택사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며 원전을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킨 건설사들의 전략 수정이 탄핵으로 불가피해 보인다는 우려가 일각에선 제기된 건 사실이다.
건설 맏형 현대건설은 탄핵 불과 한 주 전 에너지 회사로 변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직접 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부문의 매출을 5년만에 10배 가까이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탄핵으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우려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국내 에너지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한다”면서도 “큰 걱정은 않는다”고 일축했다.
현대건설은 이미 원자력 사이클이 전세계적으로 도래한 데다 해외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온 만큼 국내 정책 기조가 바뀌어도 수주 파이프라인에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존 대형 원전과 SMR 사업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이다. AI 산업 발달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SMR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SMR의 누적 투자금은 최소 2900억달러(428조원)에서 최대 9500억달러(140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건설은 대형 원전의 경우 미국 웨스팅하우스, SMR에서는 미국 홀텍을 사업 파트너로 삼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현대건설과 함께 불가리아 원전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핀란드 등으로 시장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홀텍은 미국 미시건주 펠리세이드를 시작으로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SMR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지난달 에너지 중심 미래 성장 전략 ‘H-Road’를 공개하면서 SMR 역량 확보 의지를 드러냈다. 미래형 SMR로 주목받는 4세대 원자로 MSR(용융염원자로)과 SFR(소듐냉각고속로)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현대건설 고유의 원전 브랜드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삼성물산도 이에 질세라 원전 분야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 1일 에스토니아 민영 원전기업인 페르미 에네르기아와 현지 SMR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를 체결했다.
페르미 에네르기아는 에스토니아 SMR 건설을 위해 2019년 설립된 기업이다. 지난해 2월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으로부터 동쪽 약 100km인 지역 두 곳을 사업 예정지로 공개했다. 이곳에 비등형 경수로를 개량한 300㎿ 규모의 SMR 'BWRX-300' 도입을 계획 중이다.
삼성물산은 페르미 에네르기아가 추진하고 있는 SMR 건설에 대한 사업 초기 단계 참여를 추진한다. 사업 구조 수립 및 비용산정, 부지 평가를 포함한 개념설계부터 기본설계에 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사업 절차에 착수해 2035년 상업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에스토니아 외에도 유럽 각지의 SMR 사업 참여를 꾀하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SMR 사업 기본설계를 수행 중으로 향후 EPC(설계·조달·시공) 최종 계약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DL이앤씨는 담수플랜트에 SMR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DL이앤씨는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 해수담수청(SWCC)과 담수화 플랜트에 SMR을 적용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미국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 한전KPS와 3사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우건설도 SMR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2023년 한국수력원자력과 혁신형 SMR 개발 협약을 맺은 데 이어 올해는 한전KPS와 SMR의 설계·시공·유지정비(O&M) 등 전 주기에 걸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원자력 이용시설에 관한 사업을 정관상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국제사회의 탄소저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원자력발전 및 SMR 시장 확대 전망에 따라 관련 분야 진출을 목표로 한다는 게 포스코이앤씨의 설명이다.
한 원자력 업계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원자력 발전은 주력으로 사용할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데다 AI 산업 발달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며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며 “이에 대형 원전 준공 실적을 보유하고 SMR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국내 건설사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