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보내지 말고 모시자···세대 공존 실버타운 '백운호수'
전 세계 주거 키워드 '3세대 공존' 공공·민간, 혼합형 주거 단지 시도 사업성 위한 복합 개발 추진 목적 지속 위한 조건은 "경제적 실효성"
고령층과 자녀 세대가 함께 거주하는 '세대 공존형' 주거 모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세대 혼합형 주거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분석된다. 다만 국내에선 '세대 공존'을 일차적 목표로 하기보다 사업 안정성 확보를 위한 복합 개발 방식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아 이상적 모델로 보기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공공과 민간을 중심으로 고령 세대와 자녀 세대가 같은 단지에 살 수 있도록 설계된 복합 주거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실버타운과 오피스텔·일반주택이 함께 들어서며 고령자는 생활 지원 서비스를 받으면서 자녀 세대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3세대 공존'은 세계적인 주거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익명의 한 시니어 주거 사업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3세대 공존'이 전 세계 주거 트렌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싱가포르, 일본 등 해외에서 진행 중이고 국내에서도 시도하는 추세”라며 “예를 들어 프리미엄 실버타운 '더 클래식 500'에 가보면 입주자 평균 연령이 83~84세인데 건물 1층에 젊은 일반 사람들도 들어올 수 있는 근린생활시설 형태의 공간을 혼합시켜 노인 주거시설이라는 느낌은 없다. 호텔은 남녀노소, 가족 형태로 방문하듯이 시니어 주거단지도 그런 형태로 구성되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복합형 구조를 갖춘 민간 사례로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이 있다. 부동산개발사 엠디엠플러스가 국내 최초로 추진 중이다. 노인복지주택(임대형)과 일반 오피스텔(분양형)이 같은 단지 내에 배치된다. 노인복지주택은 만 60세 이상만 입주 가능한 전용 주거 공간으로 식사·의료·컨시어지 서비스를 갖춘 호텔식 실버타운이다. 오피스텔은 연령 제한 없이 분양받을 수 있어 자녀 세대가 함께 단지 내에 거주할 수 있다. 입주는 오는 11월부터 시작된다.
엠디엠플러스 관계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은 부모, 부부, 자녀 3대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가족 간의 독립성과 함께 가까운 거주를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이 고립될 수 있다는 기존 실버타운 선입견을 깨고 '가구, 세대 복합형 주거단지'를 진행 중”이라며 “입주 후 세대 간 교류를 통해 시니어 세대는 코칭이 필요한 학생(젊은 층)들에게 보유 전문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강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젊은 세대는 노하우를 전수하며 사회적 경험을 얻어 갈 수 있으므로 세대 공존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에서도 유사한 모델이 추진되고 있다. 세종시 5-1생활권에 조성 예정인 시니어타운은 공공 임대형 실버타운과 민간 분양 아파트가 결합한 복합 단지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총괄 기획하고 있다. 행복청은 수도권 은퇴 고령자와 자녀 세대가 함께 이주할 수 있는 복합단지를 조성해 도심형 고령자 주거 모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시니어타운 입주자에게는 의료·복지시설을, 아파트 거주자에게는 생활 인프라를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해당 단지는 국토교통부·LH가 추진 중인 '헬스케어 리츠 사업'의 후속 모델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운영 주체 및 입주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울시도 2022년 '골드빌리지'라는 이름으로 고령자용 복지주택과 자녀 세대용 공동주택을 함께 공급하는 공공 실버타운을 추진했으나 사업성 부족과 운영 한계 등으로 무산됐다. 현재 해당 부지는 민간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며 구상했던 세대 공존형 실버타운은 실현되지 못했다. 공공주도의 고령자 복합 주거 실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거 환경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고령자 전용 주거와 일반 세대가 섞인 혼합형 커뮤니티는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만 아직 국내 주거 트렌드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사례 자체도 많지 않고 현재 나오는 모델들도 사업성 확보 차원에서 복합 개발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의 정책 방향이 지역사회 통합 돌봄(Aging in Community)으로 설정된 만큼 앞으로는 세대가 분리되기 어려운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 고령사회 대응 방향이기도 하다”면서도 “다만 실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이나 주거 유형 등 물리적 기반은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세종시 시범 사업도 고령자와 자녀 세대의 공존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민간사업자의 참여 유도·사업성 확보를 위해 복합 개발 방식으로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사례들은 새로운 시도이므로 앞으로 지켜보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옥근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미래전략센터장은 “세대 공존형 주거는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고령자나 자녀 세대 모두에게 현실적인 경제적 유인이 없다면 지속되기 어렵다”며 “이 같은 구조가 안정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선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실질적 이점이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