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법사금융 불식을 위해 서민금융기관의 문턱을 낮춘다는 탁상공론
불법사금융 피해자 평균 이자율 503% 문 넓히라지만 부실은 누가 감당하나 대책 빠진 확대론은 해법 되기 어려워
"45만원 빌렸는데 135만원을 갚았어요. 그런데 아직도 원금이 남았대요."
불법사금융 피해 상담을 요청한 한 시민의 토로다. 급전이 필요해 정식 등록 대부업체를 찾았지만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문자 광고를 보고 불법 사채업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서도 교부받지 못한 채 시작된 거래는 끝없이 반복되는 연장과 이자로 이어졌고 마지막엔 지인들에게까지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불법사금융 거래내역 확인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작년 불법사금융 피해자의 연 평균이자율은 503%, 평균 대출금은 1100만원에 달했다. 제도권 밖에서 이뤄진 이 거래들엔 감당할 수 없는 비용과 두려움이 덧씌워져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불법으로 내몰았을까. 공통된 문제는 '접근성'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먼저 등록 대부업체나 서민금융기관을 찾았다. 그러나 심사 기준이 높아지고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대출은 점점 까다로워졌고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이 불법사금융으로 향했다. 합법적인 통로는 바늘구멍이었고 불법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서민금융기관은 말 그대로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안전망으로 설계된 제도다. 그런데 정작 취약계층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말만 서민금융기관일 뿐 실제 대출 실행과정은 일반 금융기관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은 객관적 기준으로 볼 때 변제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에 '취약계층'으로 분류됐다. 일반 금융기관에서 적용하는 각종 잣대를 들이대면 대출을 해줄 수 있는 대상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민금융기관도 연체율과 부실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다.
그렇기에 서민금융기관은 돈을 갚을 의지와 잠재력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별도의 노하우를 갖춰야 한다. 담보도 없고 뚜렷한 직업도 없지만 갚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적은 수입이라도 꾸준히 벌고 있는지 등 일반 금융기관에선 다루지 않는 '생활밀착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취약계층을 탈출할 수 있는 '금융 사다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과연 국내 서민금융기관 가운데 이런 데이터와 시스템을 갖추려고 시도라도 하고 있는 곳은 몇이나 될까. 말만 서민금융기관일 뿐 사무실에 앉아 서류만 뒤적거리면서 대출심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불법사금융을 불식하려면 합법 금융의 문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서민금융회사 입장에서도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부실이 늘어날 경우 감독당국의 제재를 피할 수 없다. 살아남자면 심사를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문호 확대만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서민금융기관의 대출 여력을 높여 대출 문턱을 낮추겠다는 '양적 확대' 정책이 현실에선 작동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단순한 문턱 낮추기가 아닌 실질적 상환 능력을 함께 키우는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서민금융기관도 취약계층 안에 금융 사다리를 만들자면 다양한 심사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취약계층의 '상환 능력 제고' 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 금융교육, 채무관리, 자립 기반 마련을 포함한 통합적 지원 없이는 문턱을 낮춘다 해도 부실과 배제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도는 지원이 필요한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하고 선별된 이들이 실제로 버틸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결국 관건은 '돈을 빌려주는가'보다 '다시 설 수 있게 만드는가'에 있다. 서민금융은 이제 단순한 대출을 넘어야 한다. 금융교육, 부채관리, 그리고 자립을 위한 일자리 연계까지 뒷받침돼야 한다. 취약계층의 자활 의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의지를 받아줄 제도가 여전히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대부’라는 용어에 대한 사회적 오해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불법 사금융과 제도권 대부업 간 경계가 흐려진 상황에서 명칭 자체가 신뢰 형성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명칭 변경만으로 인식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다 실효적인 접근은 합법 대부업과 불법 사금융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보 제공과 소비자 안내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다. 금융 이용자가 스스로 위험을 식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신뢰 회복의 선결 조건이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