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구경 즐기긴 글렀네"···산불·탄핵 여파에 심리 위축

지자체 잇따라 행사 취소 헌재 선고 후 후폭풍 예상 "외출해도 소비 줄어들 것"

2025-04-02     이상무 기자
지난해 벚꽃 만개한 인천대공원 /연합뉴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4월 초다. 정치, 사회, 경제 모두 먹구름이 낀 시국이기 때문이다. 막막한 국민 심정에 벚꽃 나들이에 나서도 즐길 분위기가 침체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불 여파에 벚꽃이 만발한 영남 지역은 지자체들이 봄꽃 축제를 취소하거나 축소·연기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통영시는 지난달 29~30일 봉숫골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0회 봉숫골 꽃 나들이 축제'를 오는 5~6일로 연기했다. 산불재난 국가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발령된 상황에서 산불 예방과 대응 준비를 위한 조처다.

창원시가 개최하는 국내 최대 봄꽃 축제인 제63회 진해군항제(3.29~4.6)는 산불 희생자 애도와 국민 정서를 고려해 군부대 참여가 취소되면서 행사가 대폭 축소됐다. 합천군은 제24회 합천벚꽃마라톤대회를 예정대로 지난달 30일 개최한다고 했다가 민원인의 반발을 사서 축포 쏘기나 치어리더 공연 등은 없애고 진행했다.

경남을 방문하려 했던 이용객들이 숙박을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지역 여행사에도 여행 예약 취소나 연기 등에 대한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상에도 "산불 때문에 놀러 가기가 애매하네" "내일로 패스 3일권 끊었는데 어디 갈 수나 있는지 모르겠네" "올해 벚꽃 여행은 포기해야 할 듯" 등 관련 글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적 혼란도 벚꽃 구경에 불안 요소로 꼽힌다. 금요일인 오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예정돼 있는데 어떤 결정이 나오든 반대 측의 집단 행동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탄핵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탄핵안이 기각 또는 각하될 경우 윤 대통령은 즉시 국정에 복귀하게 된다. 반면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인용으로 파면될 경우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진행해야 하는 정국이 시작된다.

15일 서울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연 15차 범시민 대행진, 오른쪽은 서울 세종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가 연 광화문 국민대회.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민생경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언급을 한 적 있는데 입장 변화가 없나'라는 질문에 "승복은 윤석열(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겨냥 "아주 오만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일 뿐 아니라 헌법 위에 자신이 서겠다는 의사표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당국은 이미 헌재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1일 정오부터 헌재 인근 3호선 안국역 1·6번 출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출구가 폐쇄됐다. 4일에는 안국역이 종일 폐쇄된다. 시위대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인근 시청역·경복궁역·광화문역과 여의도역 등은 무정차 통과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특히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의 행사 시작일은 당초 4일로 탄핵 선고일과 겹쳤는데 주최 측이 8일로 연기했다. 대규모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인근으로 몰리면 소음이 불가피하다. 영등포구는 혼잡이 예상되는 벚꽃길과 여의나루역 주변에 공무원, 자원봉사자, 경찰, 소방인력 등을 집중 배치해 현장 질서 유지와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다. 미국의 관세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수출마저 얼어붙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 중반까지 낮추며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민생경제 현황 및 전망’ 조사에 따르면 국민 71.5%가 ‘1년 전보다 가계 경제가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물가 상승’을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은 응답자가 71.9%에 달했다.

국민들은 식료품과 외식비(71.0%)를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았으며, 에너지 비용(11.0%), 주거비(4.5%)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물가 상승 압박은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생필품 가격 상승이 체감경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는 실제 벚꽃 구경 수요가 있더라도 소비는 예년만 못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현정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산불, 탄핵 영향이 있는 가운데 현대인이 일상생활을 살아갈 때 리프레쉬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오히려 답답한 면도 있으니까 축제 자체는 갈 수도 있지만 기념품을 구매하거나 음식을 사 먹는 행위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안 좋으면 장기 해외 여행이나 제주도로 며칠 가는 건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든다"며 "벚꽃 구경은 멀리 안 가더라도 즐길 수 있는데 당일치기로 돈을 많이 쓰는 심리에는 현 상황이 분명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