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 더봄] 도시농부의 텃밭 이야기 ⑫- 새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
[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씨앗에서 배우는 놀라운 생명력 텃밭의 작물도 심는 때가 있고 흙과 비, 바람과 햇볕이 도와야 늘 자연과 하늘에 겸손한 마음
올해도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텃밭을 시작한다. 집에서 자전거로 20여 분 걸리는 성내천 근처에 주말농장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주말농장으로 향했다. 자전거는 주말농장까지 이동 수단으로는 최고다. 원하는 곳 어디든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다.
주말농장에 전철이 안 닿으니 전철은 안 되고, 버스 정류장도 멀리 떨어져 있어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가까운 거리에 승용차를 가져가 기름을 소비할 필요도 없다. 차는 편리하고 빠르지만 주차료도 받는다. 하지만 자전거는 텃밭 농사하기에 가장 적절하고 편리한 도구다.
냉장고에서 작년에 쓰고 남은 씨앗을 꺼내 점검해 봤다. 모종을 사야 하는 열매채소 몇 종류를 빼놓고는 작년 남은 씨앗을 그냥 사용해도 무방하다. 씨앗은 냉장고에만 보관해 놓으면 몇 년을 쓸 수 있다.
2010년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사적 67호)에서 발견된 연꽃 씨앗이 무려 700년 만에 꽃을 피웠다고 한다. 10개가 발견되었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보니 약 700년 전 고려시대의 것이었다. 박물관은 이 연꽃을 옛 아라가야가 있던 함안군의 옛 명을 따라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다. 씨앗의 신비다. 적절한 온도에 수분만 있으면 몇 년이 지났어도 싹을 틔운다.
일정하게 구획정리를 하고 나누어진 밭에는 벌써 상추 모종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서두르면 자칫 냉해를 입을 수 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빨리 수확하고 싶은 조급증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다행히 기온이 따뜻하면 모르는데 냉해를 입으면 오히려 채소가 깨어나는 데 시간도 걸리고 성장이 늦어진다. 씨를 뿌리는 채소는 4월 7일경이 맞고 모종을 사다 심는 것은 4월 10일이 넘어야 적정 시기다.
여행 다녀와 감자 한 골 심었는데 아직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꿈속에 있는 듯하다. 일주일이 지났건만 싹이 나오는 흔적은 아직 없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심는 것이 감자다. 씨눈을 중심으로 한 조각씩 땅에 묻어주면 된다. 땅속에서 한껏 땅 내를 맡고 몸을 부풀리다 뿌리를 내린다. 그러다 싹을 틔우고 흙을 비집고 나오는 순간 무섭게 성장한다.
감자는 땅속에서 준비 시간이 꽤 여러 날 걸리는 채소다.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감자를 일찍 심는 이유는 여름 장마철 이전에 캐기 위해서다. 장마가 닥치면 감자는 썩기 쉬워 이른 수확을 한다. 텃밭에 와보니 물통도 설치가 다 되어 있고 이제 준비는 다 되어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
텃밭도 해보면 저절로 되지 않는다. 하늘이 도와줘야 한다. 적절한 비가 와야 하고 햇볕이 있어야 하며 바람도 불어야 한다. 지나쳐서도 안 되지만 부족해서도 안 된다. 언젠가 비가 연속으로 퍼부어 고추, 토마토 등 열매채소가 물이 차고 곯아 망쳤던 적이 있다. 조그만 텃밭 농사라 그렇지 한 해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부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텃밭을 해보니 농부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비가 부족하고 폭염이 계속되면 작물은 급기야 폭염에 버티지 못하고 타버리고 만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농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연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텃밭은 주인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터다. 무엇을 심을 건지 내가 원하는 씨앗을 뿌리고 가꾸면 된다. 수확은 뿌린 대로 거둬들인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다. 거짓 없는 자연은 늘 배워야 할 스승이다. 텃밭은 새롭고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이라 설렌다.
여성경제신문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jsp107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