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분단 사회] ⑤ 감정 배설, 책임감 결여···확증편향 벗어나려면
떡밥 던져 이용자 논쟁 유도 "경제적 불만족에 외부 탓" 강력 규제, 표현의 자유 침해
| 한국 사회는 분열돼 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특정 집단의 성향이 극단화됐다.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조롱과 혐오, 비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정도가 심하다. 이에 여성경제신문이 온라인에 나타난 갈등 실태를 분석하고 분열로 인한 사회의 악영향을 파헤친다. [편집자 주] |
온라인 커뮤니티가 끊임없이 사회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어 저출산, 양극화 시대에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집단 간 감정적 대립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요구되고 있다.
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성은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할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혐오가 증가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사용되는 어투가 '반말'인 경우가 많아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이는 현실에서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배설하게끔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구체적으로 커뮤니티에서는 '떡밥'을 던진다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떡밥은 뭔가 가십거리가 될 만한 주제나 타인이 흥미 있어 할 주제와 상황 등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떡밥을 던지는 '어그로꾼'들은 갑자기 커뮤니티에 정치, 젠더, 종교 문제 등 논쟁이 될 만한 글을 올려서 이용자끼리 '키보드 배틀'을 유도한다. 이에 집단 심리가 강화되고 혐오 정서를 드러내는데 서슴지 않게 되는 구조다.
또한 확증편향으로 특정 집단에 속한 사용자들이 반대 의견을 가진 사용자들을 공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는 학회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지난해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편향을 선정했다. 전체 국민 중 최근 1개월 이내 인터넷을 이용한 사람의 비중은 2023년 기준 94%여서 인터넷 여론이 실제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신정섭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이 유권자의 정서적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통해 "경제적으로 불만족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불만족한 경제적 상황의 원인을 자기 자신보다는 외부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과장된 혐오나 증오감정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실패에 대한 원인을 특정 정치 세력 탓으로 돌리면서 혐오감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커뮤니티는 조회수가 수익으로 연결되는 유튜브와는 다르지만 단순히 높은 조회 수를 노리는 경우도 많아 자극적인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다는 점이 같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뇌피셜'이 허용되는데 책임감이 결여된 인터넷 사회의 단면이다.
2010년대 들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든 추세도 확증편향이 강화된 배경으로 꼽힌다. KBS '뉴스9'의 연평균 시청률은 2011년 18.3%였지만 2024년 4월 5.9%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MBC '뉴스데스크'는 9.8%에서 6.1%, SBS '8시 뉴스'는 12.9%에서 4.7%로 하락했다. 이에 반해 온라인 커뮤니티, SNS 사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문가는 커뮤니티 인기 글을 소재로 한 언론 보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활빈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일부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대중이 알게 되는 건 기사화되거나 널리 공유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상당 부분은 언론들이 너무 자극적으로 다루거나 무분별하게 보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러 남들을 공격하거나 명예 훼손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친구들끼리 과장해서 대화하는 수준"이라며 "내부에서 일회성으로 돌아다니는데 외부에서 자극적인 부분 위주로 보도해서 또 가짜뉴스까지 생기다 보니 부정적 시각이 많은데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건 미디어 성격이 달라서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려는 정치권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2022년 4월 이상헌 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특정인이 권리 침해를 받아 게시글을 신고하면 해당 홈페이지 관리자는 운영 중지 조치를 해야 하는 내용이다. 2020년 12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이용자를 식별하기 위해 모든 아이디와 IP 주소 전체를 공개하는 내용으로 '인터넷 준실명제'라 불렸다. 하지만 두 법안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반대론에 부딪혀 폐기됐다.
불신과 공격성이 커지면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건수는 증가 추세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21년 2만8988건, 2022년 2만9258건, 2023년 2만4252건으로 최근 5년간 계속 2만건을 웃돌았다.
다만 검거 이후 징역형까지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다수가 벌금형에 그쳤다.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하는 합성 포스터를 커뮤니티에 게시한 누리꾼은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에 건전한 커뮤니티 문화 정착을 위한 자정 노력과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이 대두된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공론장을 좌지우지하는 플랫폼의 디지털 권력을 견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며 “건강한 공론장에 있어서 투명성은 전제 조건이다. 이용자가 플랫폼 환경을 이해하고 조건을 설정할 수 있어야 콘텐츠 게시자 권력 비대칭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