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대신 알고리즘" 전장 지형 바꾸는 AI, 한국형 'DIU' 시급한 이유

러-우 전쟁이 쏘아 올린 AI 전장 시대 美 '디펜스 테크' 중심 국방 예산 투입 韓 기업, 팔란티어·쉴드AI와 협력 확대 "민간 방산 진출 위한 제도적 창구 필요"

2025-03-30     김성하 기자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디펜스 테크(첨단 국방 기술)'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개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디펜스 테크(첨단 국방 기술)' 시대가 열리고 있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이후 방위산업의 세 번째 성장기를 맞은 가운데 미국을 필두로 주요국들이 AI를 군사 기술에 접목하며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글로벌 협력과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전 세계 군사 지출은 9년 연속 증가해 2023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22조4400억 달러에 달했다. 최근 3년간 방산 시장 지출도 연평균 5.4% 증가하며 냉전 이후 두 차례의 방산 붐에 이어 세 번째 성장기에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위산업 기술 전환의 분기점은 3년 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인 러시아에 맞서 장기간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AI 기반 '델타 상황 인식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페타바이트(약 100만 기가바이트) 규모의 영상, 사진, 음성, 문자 정보를 AI로 분석해 전선의 지휘관에게 적군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전면전에 대응했다.

우크라이나 '브레이브원(Brave1)' 공식 사이트. /Brave1 캡처본

또한 2023년 4월 우크라이나는 '브레이브원(Brave1)' 국방 기술 플랫폼을 출시해 방산 기술 촉진, 투자 유치,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전장의 수요를 국내외 기술 개발자들과 신속히 연결했다. 이 플랫폼을 통해 무인 드론, 수륙양용차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추진됐으며 일부는 실제 전선에 투입되기도 했다. 타임지는 이를 두고 "러-우 전쟁은 AI 전쟁 실험실이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각국은 디펜스 테크에 본격적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재 약 60개국이 AI 기반 군사 전략을 보유하고 있으며 15개국은 전략 수립을 진행 중이다. 특히 미국은 올해 8652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 예산 중 약 20억 달러를 AI 분야에 투입하고 무인·자율 시스템에도 최대 35억 달러를 추가 배정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방산 업체의 81%가 AI와 머신러닝을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센서, 드론, 위성 등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AI와 클라우드 기반 기술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의 AI 전략 핵심에는 '팔란티어(Palantir)'가 있다. 팔란티어는 전차, 전투기 등 군 자산 데이터를 디지털 트윈으로 시각화해 '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JADC2)'를 지원한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미 연방정부와 총 308건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중 지난해에는 6670만 달러(약 977억원) 규모로 최대 금액을 수주했다.

팔란티어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 트럼프 2기 핵심 인사로 꼽히는 피터 틸이 공동 창업한 기업으로 방산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분석, 보안, 데이터 통제 등 전방위적 기술 역량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통 방산 강자 RTX(레이시온)를 제치고 1억7800만 달러 규모의 전투 지휘 차량 '타이탄' 공급 계약을 따냈다. 타이탄은 센서로 수집한 정보를 AI가 분석해 병사들에게 실시간 전략 정보를 제공하는 첨단 차량이다.

팔란티어 AI 방산 시스템 '고담' 사용 예시 사진. /팔란티어 공식 사이트 캡처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은 2023억 달러로 RTX(1736억 달러), 록히드마틴(1097억 달러)을 넘어섰다. 불과 1년 전 20달러대였던 주가는 지난달 120달러를 돌파하며 '신흥 방산 빅테크'로 떠올랐다.

국내 기업들도 팔란티어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달 초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미국에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와 만나 'AI 조선소'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양사는 2021년부터 '미래형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 중이며 지난해 9월에는 무인수상정(USV) 개발에 착수해 2026년 정찰용 USV 완성 후 전투용 모델로 확대할 계획이다.

KT, HD현대오일뱅크 등도 팔란티어와 함께 AI 기반 산업 안전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과 팔란티어의 협력 접점이 늘어나는 배경으로 트럼프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지목한다. 팔란티어의 사업 확장 기조와 미 행정부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국내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국내 스타트업도 글로벌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생 방산 AI 스타트업 '퀀텀에어로'는 미국 스타트업 쉴드AI와 한국 독점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AI 파일럿 시스템 'Hivemind Enterprise(HME)'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쉴드AI는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기업으로 국방·항공우주 분야에 적용되는 AI 기반 자율 비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미군 및 동맹국의 무인 시스템 운용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쉴드AI는 팔란티어 등 글로벌 방산 및 투자 기업들로부터 2억4000만 달러(약 3700억원)를 유치하며 약 53억 달러(약 7조7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쉴드 AI 공식 사이트 캡처

최근 쉴드AI는 팔란티어 등 글로벌 방산 및 투자 기업들로부터 2억4000만 달러(약 3700억원)를 유치하며 약 53억 달러(약 7조7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는 1년 전 28억 달러에서 두 배 가까이 상승한 수치로 방산 AI 분야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글로벌 AI 방산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수출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방산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부 특수 장비와 첨단 기술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기술 제휴와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 방산업체 및 스타트업과의 협력 기회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전문가는 한국의 AI 기반 첨단 국방 기술 체계가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한국도 AI 방산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구체적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라며 "정책 방향뿐만 아니라 제도·예산·조직·인력 등 전반의 체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속 획득·시범 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지만 네이버·카카오 같은 민간 첨단 기업들이 방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창구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미국의 국방혁신단(DIU)처럼 민간 기업이 방산 시장에 적극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기존 방산 기업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