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세의 실버타운 탐방기] 3.신앙과 돌봄이 어우러진 공동체 공주원로원 ① 오정호 대표, 이혜진 원장 인터뷰
月127만원, 가성비에 감동까지 최고 요양원·주간보호·재가복지센터 겸영 목사 부부가 함께 거주하며 목회 활동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저서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신앙과 돌봄이 어우러진 공동체, 공주원로원
충남 공주시의 한적한 언덕 위 신앙과 따뜻한 돌봄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공주원로원은 단순한 실버타운이 아니다. 실버타운,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재가복지센터가 한 울타리 안에 자리 잡은 ‘복합 노인복지 공동체’로 신앙 중심의 삶과 단계별 돌봄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사회적 고립과 노후에 대한 불안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 공주원로원이 지닌 공동체적 가치와 운영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만한 대안이 되고 있다. 기자는 그 생생한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자 공주원로원을 찾았다.
이곳은 오정호 대표를 중심으로 실버타운 입주 상담과 실무 운영을 담당하는 오순애 원장 그리고 행정·회계와 요양원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이혜진 원장이 함께 3인 운영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중 기자는 오정호 대표와 이혜진 원장을 만나 공주원로원이 걸어온 길과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미리 준비하는 노후, 달라진 실버타운 입주 문화
공주원로원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혜진 원장은 “예전에는 실버타운을 ‘마지막에 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은 건강할 때 미리 입주해서 안정된 삶을 오래 누리려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80대 이상 입주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70대 초반부터 실버타운 입주를 고려해 상담을 받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유튜브나 책 등을 통해 정보를 미리 수집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결과다.
공주원로원은 총 105개 객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터뷰 당시에는 전 객실이 만실 상태였다. 입주를 원할 경우 대기가 필요하지만 인기 있는 평형을 제외하면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입주가 가능하다. 일부 일반 객실은 게스트룸으로도 운영되고 있어 가족들이 함께 머물며 부모님과 며칠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합리적인 비용, 실속 있는 생활
공주원로원의 입주 비용은 평형대에 따라 1인 기준 입주보증금 9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수도권 실버타운에 비해 경제적 부담이 확연히 덜하다. 월 생활비는 127만원에서 136만원 사이로 90식 의무식을 포함해 청소 및 세탁 서비스, 물리치료실 이용, 공주시내 셔틀 차량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다. 개인 용돈까지 더해도 한 달 200만원 이내에서 생활이 가능하며 부부가 함께 입주할 경우에도 월 3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이 원장은 “공주원로원이 이런 낮은 비용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종교법인 시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대형 부대시설을 따로 두기보다는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연계해 활용하는 전략 덕분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실내 수영장 같은 시설을 내부에 마련하지 않고 공주대학교나 지역 복지관 등의 시설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셔틀 차량도 운영해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외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원장은 “이렇게 외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어르신들에게 더 큰 활력을 주는 경우도 많아요”라고 덧붙였다.
특히 식사는 입주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서비스다. “기존 외주 운영에서 벗어나 직접 식자재를 구매해 조리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신선한 재료를 매일 들여와 어르신들 식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곳 식사는 다른 실버타운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실 정도로 만족도가 높습니다.”
직원 복지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요양원의 경우 요양보호사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출퇴근 차량을 제공하고 급여도 타 기관보다 높게 책정하고 있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만족하고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사용하는 기저귀도 일반 제품이 아니라 흡수력이 뛰어난 수입 제품으로 선택해 어르신들의 피부 건강까지도 꼼꼼히 챙기고 있습니다.”
공주원로원, 신앙과 헌신으로 다시 태어나다
지금의 공주원로원이 있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현재 공주원로원의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오정호 대표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시설은 크고 훌륭했지만 30% 가까이 공실이 있었고 요양원도 일부 층만 운영되는 상황이었다.
오 대표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1년 처음 공주원로원을 둘러봤을 때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건물은 컸지만 입주자는 거의 없었고, 운영도 어려운 상태였어요. 그때 한 어르신께서 제게 ‘이곳이 문을 닫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제 가슴 깊이 박혔고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공주원로원은 한국장로교회복지재단이 설립한 기독교 기반의 실버타운이다. 지금은 안정적인 운영과 깊이 있는 신앙 공동체로 주목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해 있었다.
2011년, 예수교장로회총회 부총회장으로 선출된 오 대표는 동시에 ‘공주원로원 대책위원장’이라는 책임도 맡게 되었다. 대책위원회는 여러 대형교회에 운영을 요청했지만 수십억 원의 누적 적자와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모두 고사했다.
“그때 저는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결국 ‘내가 직접 운영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오 대표는 ‘대책위원장’이라는 직함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공주원로원의 운영 책임자가 되어 본격적인 회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수십억원 빚을 갚기까지, 공주원로원의 기적
2011년, 오 대표가 공주원로원을 처음 맡았을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누적된 빚만 수십억원에 매월 수천만원씩 적자가 반복되고 있었다. 오 대표는 부채 상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곧바로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우선 난방 시스템을 기존 도시가스에서 전기로 전환하고 옥상에는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다. 노인복지시설에 적용되는 전기요금 할인 혜택까지 더해져 에너지 비용만 연간 8000만원 이상 절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낡은 창호와 실내 시설을 수리하고 운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정비해 운영 비용을 줄여나갔다. 그 결과 운영을 맡은 지 9년이 지난 2020년 마침내 모든 채무를 상환하며 재정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 이후 입소 문의가 크게 늘었고 2025년 현재는 6개월 이상 대기해야 입주할 수 있을 만큼 공주원로원은 비수도권 최고 인기 실버타운으로 자리매김했다.
오 대표는 단지 운영만 맡은 것이 아니다. 2011년부터 이곳 기숙사에 거주하며 현재 8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24시간 단지 곳곳을 직접 점검하고 돌보며 공주원로원 운영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앙 중심의 생활, 그 자체가 공동체
“공주원로원이 다른 실버타운과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바로 신앙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오 대표는 이곳의 특별함을 그렇게 정의했다. 공주원로원에는 목사님 부부가 상주하고 있으며 실버타운 내부에 자리한 교회에서는 매일 새벽기도와 성경 공부, 찬양 모임이 빠짐없이 이어진다.
“처음 새벽기도를 시작할 땐 과연 몇 분이나 참석하실까 싶었는데, 지금은 60명 가까이 꾸준히 나오십니다. 이곳 어르신 대부분이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들이라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됐죠.”
입주자의 70~80%는 기독교 신자이며 권사, 장로, 목회자, 사모 등 평생 신앙생활을 이어온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은 자연스럽게 신뢰와 연대감이 생기는 공간이다. 입주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젊은이 중창단’, ‘에스더 중창단’ 등 소규모 찬양 모임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신앙을 중심으로 신뢰가 쌓이고 그 안에서 삶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공주원로원은 단순히 공동 공간을 사용하는 실버타운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에서 찾아오는 입주자도 적지 않다. 미국 LA에서 온 한 입주자는 원래 다른 실버타운과 계약을 했지만 공주원로원의 신앙 공동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실버타운과 요양원, 끊김이 없는 돌봄 시스템
공주원로원의 또 다른 강점은 실버타운,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재가복지센터가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보통 다른 실버타운은 건강이 나빠지면 요양원을 새로 알아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실버타운과 요양시설, 주간보호센터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어르신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고 같은 환경에서 돌봄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어요.”
현재 공주원로원 요양원은 정원 102명이며 1인실과 2인실로 구성된 치매 전담실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공주시에서 5억원을 지원받고 자체 예산 8억원을 들여 치매 전담실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돌봄 환경을 갖추게 된 거죠.”
공주원로원의 미래를 향해
오정호 대표는 현재의 안정을 넘어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단순히 운영 정상화에 그치지 않고 주간보호센터도 신축하여 3월에 단지내 단독건물로 이전하였다.
“처음에는 공주원로원을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이곳을 한국을 대표하는 노인복지 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주변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고 계속적으로 시설 보완을 통해 어르신들께서 좀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오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식품 제조 분야에서 두 개의 수백억원대 중견기업을 일구어낸 사업가이기도 하다. 현재 사업체들은 두 아들에게 각각 경영을 넘기고 그는 전적으로 공주원로원에 헌신하고 있다. 사업 경험과 복지에 대한 신념을 겸비한 리더로서 그가 가진 역량은 공주원로원의 운영 전반에 녹아 들어 있다.
“실버타운을 비롯한 노인복지시설은 복지에 대한 진정성과 현실적인 운영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 맡아야 제대로 운영됩니다. 진정성 없이 이익만 추구하거나 반대로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일부 100% 분양형 실버타운이 고령자 아파트처럼 변질되거나 임대형 실버타운이 운영난으로 폐업한 사례들이 그걸 보여주죠.”
그는 공주원로원의 사례를 통해 종교적 신념과 사업적 실행력이 조화를 이룬 새로운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 대표는 나아가 이런 경험과 노하우가 정부의 공공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저 같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운영 노하우를 다른 복지시설이나 기관에도 나눠줄 수 있다면 정부가 추진 중인 분양형 실버타운이나 고령자 주거복지 정책의 실현에도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공주원로원은 단순한 노인 주거지가 아니라 신앙과 돌봄이 어우러진 공동체이자 오정호 대표와 이혜진 원장이 함께 만들어가는 ‘노인의 삶이 존중받는 공간’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저희는 이곳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