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란이 촉발한 명품 패션 플랫폼의 위기···제2의 티메프 사태로 번질까
발란, 입점사 판매대금 정산 지연 기업회생 절차 준비 의혹도 머스트잇·트렌비도 적자 지속
최근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이 일부 입점사에 대한 판매대금 정산을 제때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2의 티메프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란과 함께 온라인 명품 플랫폼 3대장을 꼽히는 머스트잇·트렌비 등 경쟁 플랫폼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지만 각 업체들은 정산 지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24일 당일 정산 주기가 돌아온 일부 입점사에 대해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한 상황이다. 발란은 입점사별로 일주일, 15일, 한 달 단위로 정산을 진행해 왔으나 지연이 된 것이다. 발란은 현재 1300개 이상의 입점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월평균 거래액은 약 300억원이다.
발란 측은 이와 관련해 입점사에 "재무 점검 중 정산금 과다 지급 등의 오류가 발견돼 정산금을 재산정하고 있다"는 내용을 개별적으로 통보했다. 또한 “26일까지 재정산을 마무리하고 28일까지 확정된 정산액과 지급 일정을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점사들은 발란의 정산 지연에 당혹감을 표하며 일부 입점 관계자들은 지난 25일 발란 사무실을 찾아 항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발란은 직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일각에선 발란이 기업회생 신청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날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한 발란 입점 판매자가 발란 사무실의 컴퓨터에서 ‘회생 관련 제출 자료' 파일이 있는 화면을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진에는 '발란 정산 내역 재검토 공지', '판매자 문의별 대응 메시지', '방문 문의 공지' 등 최근 정산금 지급 지연 사태와 관련된 파일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회생법원 측은 법원에 아직 접수된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정산금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 발란과 미팅을 가졌으나 발란은 "죄송하다"는 공식 입장만 반복할 뿐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은 코로나19 이후 빠르게 성장했으나 엔데믹과 함께 고물가, 고금리, 판매 부진 등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발란 역시 그 영향을 받아 2023년 자본총계가 -77억3000만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발란은 2015년 설립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하며 지난 2023년에도 9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3년 발란의 매출은 392억원으로 급감했으며 유동자산은 56억2000만원에 불과하고 유동부채는 138억1000만원에 달한다. 유동비율이 40.7%로 낮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는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상환해야 할 부채가 두 배에 이르는 상황으로 유동성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발란은 지난달 K-뷰티 유통기업 실리콘투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3000억원까지도 찍었던 기업가치를 10분의 1로 깎고 1차로 75억원을 우선 투자 받았다. 나머지는 9개월 뒤인 11월부터 2개월간 연속 발란의 월매출액 중 직매입 판매 비중이 50% 이상, 월간 영업이익 흑자 등 매출 목표 등을 달성해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걸렸다.
발란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현재 관련 이슈에 대해 경위를 파악 중이다. 발란 관계자는 “미정산 문제와 관련해 입점사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발란과 함께 ‘머트발’ 3사로 불리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 경쟁사인 머스트잇, 트렌비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 침체로 명품 시장도 위축된 가운데 명품 플랫폼 주 소비층인 2030세대도 명품 소비를 줄여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각 플랫폼 이용자도 급감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030 월간활성이용자(MAU)는 머스트잇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7.5% 감소한 7만3000여 명, 트렌비는 37.6% 감소했다. 실적도 악화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머스트잇의 영업손실은 79억원, 트렌비의 영업손실은 32억원이다. 아직 공시되지 않은 지난해 실적도 적자 상태가 지속됐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명품 플랫폼 위기설에 선을 그으며 재무 안정성을 강조했다. 트렌비는 “2024년 결산 재무제표에 따르면 당좌자산이 약 80억원에 달하고 이 중 파트너 정산 예정부채 35억원을 뺀 현금성 안전자산이 약 45억원으로 파악됐다. 파트너에 지급 예정 건의 2.3배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머스트잇은 판매자 공지를 내고 발란의 정산 지연으로 인해 “많은 파트너사분가 자금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실질적 도움을 드리고자 선정산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 대한 우려는 존재한다. 지난해 명품 플랫폼 캐치패션은 투자 유치에 실패해 문을 닫았고, 1세대 명품 편집숍인 한스타일은 비상경영을 하다 8월 사업을 종료했다. 이랜드글로벌의 명품 플랫폼 '럭셔리 갤러리'는 지난 12월 운영을 중단했으며, 올해 초 명품 선주문 플랫폼 '디코드'도 사업을 접었다. 명품 외에도 모노그램, 티메프, 알렛츠 등 쇼핑 플랫폼들이 모두 정산 지연을 시작으로 폐업이나 기업회생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 발란 사태에 판매자들의 불안감은 지속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패션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명품 플랫폼들은 대체로 마진율이 낮아 사실상 팔아도 남는 게 없는 구조다. 평균적인 수익률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라며 "게다가 명품 브랜드들의 지속적인 가격 인상과 코로나 때 명품을 소비했던 중산층의 소비가 고물가 영향으로 줄어들면서 플랫폼 업계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