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 더봄] 피그말리온 효과와 우리의 염원

[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조각상에 생명이 깃들기를 기도한 피그말리온 다수의 국민이 염원하는 판결은 언제?

2025-03-28     오페라해설가 한형철

그리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은 여자에게 환멸을 느껴 평생 독신으로 지낼 결심을 한 조각가이다. 그런 그가 완벽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인상을 상아로 조각했다. 정말 살아있는 듯한 미모에 반한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고, 마치 부인인 듯 이름을 붙이고 아름답게 꾸몄다. 사랑의 신의 제전이 다가오자 그는 조각상에 생명을 넣어 달라고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다. 그녀를 아내로 점지해 달라고 간절히 염원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피그말리온이 여느 때처럼 조각을 보살피는데 그녀의 입술에 온기가 돌았다. 그가 키스하며 허리를 감싸자 상아가 아닌 사람의 살처럼 부드러웠다. 그의 키스를 받은 조각상의 얼굴이 발개졌다.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깊이 안았다. 간절한 기도에 아프로디테가 두 커플을 축복한 것이다. 그의 믿음, 기대, 헌신은 생명이 없는 상아를 살아있는 존재로 변화시켰다. 

간절히 염원하면 이룰 수 있다는 현상은 신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기대와 관심으로 좋은 결과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개인이든 권력자든 기대와 염원은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석고가 점차 인간의 살로 바뀌는 기적을 보여주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 장 레옹 제롬

우리나라는 깊은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위기의 분기점에 서 있다. 국회의사당에 무장군이 진격한 친위 쿠데타에 따라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되었으나, 탄핵 심판 과정에서 내란범의 문책을 요구하는 측과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으로 국민은 분열됐다.

거리에서는 시위가 충돌하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들이 ‘법과 양심’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여론의 향방에 무게를 둔다고 의심받는 상황이다. 예전의 사례보다 명료하고 단순한 판결이라 예견했기에 더욱 그렇다. 이 판결이 그리 오래 끌 만한 사안인가?

피그말리온의 확고한 염원처럼 다수의 의지가 이 나라의 분명한 미래를 고대하고 있다. 사람들이 상식과 정의를 기대하면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식과 정의가 일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염원하면 석고상과 법도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묻는다. 이 순간의 염원은 우리 미래의 무엇을 형성할까? 사람들이 정의를 기대하지만 정의는 염원하여 이루는 것일까, 아니면 법복에서 나오는 것일까?

조각가가 조각상을 진짜라고 믿으면 조각상이 진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순간 헌법재판관은 법을 다루는 조각가이자, 망치와 끌을 손에 들고 이 나라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을 형성하는 창조자이다. 과연 그 조각상에 온기가 돌 것인가? 

그리스 신화는 종종 자연 질서를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다 바다로 추락했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비켜 가고자 했지만 결국 그 예언을 이행할 뿐이었다. 신화와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야망과 운명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민심을 거스른 권력은 필연적으로 몰락했다. 

권한이나 권력이 그것을 부여한 사람들을 배반하면 결국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 신세가 될 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믿음의 세기만큼 힘이 생긴다. 운명에 어찌 대처할지는 염원하는 이들의 몫이고 헌법재판관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는 것이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