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만 남은 산불진화대···지방은 선택지가 없다

고령 인력 중심, 지방 현실 반영된 구조 반복되는 사고···진화 체계 재설계 요구 전문가 "역할 재정의·역량 강화 시급"

2025-03-26     김정수 기자
경남 산청 산불 화재 진압하는 산불진화대원 /연합뉴스

고령의 산불진화대원이 반복적으로 사고에 노출되면서 현장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고령화 여부보다 진화대가 수행해야 할 역할과 그에 맞는 제도·역량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산불진화대의 고령화는 청년층이 급감한 농산촌 지역의 인구 구조상 불가피하다고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지역 인력 여건을 반영해 산불 진화 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적 검토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진화대는 각 지자체가 산림청 지침에 따라 단기 계약직 형태로 모집한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농촌·산간 지역에서는 청년층 지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실제 복수의 지자체 관계자는 “청장년층 지원자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했다.

지난 22일 경남 산청 산불 현장에서 사망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 3명은 모두 60대였다. 이들은 산불 3단계가 발령된 구역에 투입됐다가 갑작스러운 불길에 휩싸여 현장에서 숨졌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전남 장성군에서 70대 지원자가 진화대 체력 검정 중 사망한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시험은 겨울철 야외에서 등짐펌프를 메고 계단 수백 개를 오르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현장엔 구급차와 제세동기도 배치돼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불전문예방진화대는 산림청이 2003년부터 운영해 온 제도로 각 지자체가 지역 주민을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해 구성한다. 진화대는 평상시 산불 예방과 순찰을 담당하고 산불 발생 시 초기 대응에 나선다. 하지만 이들은 소방공무원과 달리 상시 훈련 체계나 전문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최저시급 수준의 보수를 받는다.

산림 인근에서 초기 대응을 맡는 진화대와 주요 진화·구조를 맡는 소방관 간의 역할은 구분돼 있다. 지형상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산악 지역에서는 진화대가 초기 확산을 막기 위한 지역 기반 대응 인력으로서 기능한다. 산림청이 이 제도를 도입한 배경 역시 조기 진화를 위한 현장 대응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다만 산불진화대 운영은 대부분 지자체 자율에 맡겨져 있으며 인력 기준과 훈련·장비·안전 매뉴얼 등은 국가 차원의 통일된 기준 없이 운영되고 있다. 일각에선 반복되는 사고에 대해 산불 진화 체계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5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지연제를 살포하며 산불 확산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채진 목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단기간 교육을 받은 고령의 비전문 인력을 주불 진화 현장에 투입하는 건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산불 진화의 역할과 책임을 소방이 아닌 산림청이 지고 있는 현재 체계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불 진화는 재난 대응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인 만큼 지휘·통제 권한을 소방청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휘 주체의 변경보다는 기존 체계 내에서의 실질적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산불 진화대의 고령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맡는 역할과 임무에 적합한 체력, 경험, 지식 등 실질적인 역량을 갖췄느냐는 점”이라며 “단순히 나이로 배제하는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행 산불 진화 체계에선 주불은 헬기 등 공중 진화가 담당하고 진화대는 잔불 정리나 확산 방지, 방화선 구축 등 보조 역할을 맡는다”며 “지상 진화대에 소방관과 같은 고도의 진압 역량을 요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무리”라고 설명했다.

소방 중심 전환론에 대해서도 “소방 장비나 인력을 산 정상이나 험지까지 올릴 수 없는 구조에서 단순히 소방이 더 잘 끄니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며 “산불은 수백 명 이상이 며칠간 투입돼야 하는 대규모 재난이기 때문에 소방이 이를 전담하게 되면 일반 화재 대응의 공백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처럼 인명이나 민가 피해가 확대될 경우 소방이 특정 구역에서 보조적으로 지원하고 차량 진입이 가능한 구간까지만 역할을 수행하는 등 현 체계를 보완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며 “진화대와 소방 간 기능을 명확히 나누고 각자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처럼 공중 진화가 제한되는 밤이나 강풍 시엔 결국 지상 진화대가 실질적인 주력이 된다”며 “진화대가 보조 인력이 아닌 핵심 대응 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대응 개념부터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교육을 강화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이들이 실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장비를 경량화하거나 산악 진입 인프라를 보강하는 등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진화대의 역할 수준 자체가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산불 대응의 핵심 전력으로서 보다 높은 수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역량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그에 맞춰 목표 역할을 재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장비·교육·훈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