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럼] K-밸류업, 주가 부양으론 불가능···M&A 활성화해야

기업 가치 제고한다며 주주환원만 강조 이대론 신사업 투자 유인 약화 우려 커 日 성장 지원 병행 vs 韓 상법 개정의 덫  기업인 자유 존중하는 정책으로의 전환

2025-03-20     김정수 기자
20일 여성경제신문이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개최한 제9회 금융포럼에서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상법 개정은 거꾸로 가는 정책으로 규정하며 "자본시장의 단기 차익 논리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류빈 기자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제로는 단기적인 주가 부양과 주주환원 확대에 집중되면서 정작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혁신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된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유도하는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기업의 투자 여력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일 여성경제신문이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개최한 제9회 금융포럼에서는 밸류업 정책이 금융 논리에 갇혀 단기적 주주환원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상법 개정은 거꾸로 가는 정책으로 규정하며 "자본시장의 단기 차익 논리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 참여율 증대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공시 의무화 및 구조적 접근 강화 △중소기업 참여 지원 확대 △장기적 정책 일관성 유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정부는 향후 주주환원 정책과 성장 투자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정책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인 주가 부양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까지 도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일본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수합병(M&A) 지원, 신산업 육성, 기업 세제 혜택 등을 병행하며 밸류업 정책을 추진한 결과 닛케이 지수가 4만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한국은 금융 논리를 앞세워 주주환원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 중심 정책이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신 교수는 "금융 논리가 산업 자본을 압도하면서 기업이 장기적 혁신과 투자를 추진할 유인을 낮추고 있다"며 "이러한 환경이 지속되면 기업들이 '차라리 상장 폐지가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 승계 과정에서의 부담도 한국 기업의 지속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한국의 상속세율(최대 50%)은 OECD 평균(25%)의 두 배 수준으로 이는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정부 정책이 단기적 주주환원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한 수익률 높이기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류빈 기자

정부는 현재 밸류업 정책을 통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책이 단기적 주가 부양에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기업이 신사업과 연구개발, 해외 시장 개척에 투자하는 유인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정부 정책이 단기적 주주환원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한 수익률 높이기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과정에서 투자자의 자금이 주주환원을 많이 할 수 있는 성장성이 낮은 산업에 집중되고 투자를 통해 성장해야 할 기업이 주주환원에 애쓰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밸류업 정책이 금융 규제와 충돌하면서 기업들이 오히려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윤경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는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금산분리 규제와 맞물리면서 일부 금융회사들은 주식을 강제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3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보유 지분이 상승하면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상 비금융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선제적으로 일부 주식을 처분했다.

김윤경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는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금산분리 규제와 맞물리면서 일부 금융회사들은 주식을 강제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빈 기자

김 교수는 "산업과 금융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금산분리 규제가 기업가치 제고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해외 금융회사나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국내 금융회사들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국내 금융회사의 88.1%가 금산분리 규제가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최근에는 사모펀드가 기업 지배에 적극 개입하면서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충돌이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사모펀드들이 기업 경영권을 장악한 뒤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은 2015년 7조2000억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LBO(차입매수) 방식으로 인수했고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올해 3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주주환원 확대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금융사의 지분 확대, 혁신 금융 출자 제한 완화 등 총체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며 "밸류업 논의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경제 원칙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미 연구실장 역시 "기업이 주주환원을 늘리도록 세제 혜택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공시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선 정부가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금융 논리에 갇힌 밸류업 정책이 아니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M&A 활성화, 금융·산업 정책 조율, 기업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종합적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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