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⑮ "기업인 죄인 취급 그만···뛸 수 있어야 경제가 산다"

한석훈 국민연금 투자정책위원장 인터뷰 기업범죄 전문가가 본 반기업 포퓰리즘 삼성 사례와 같은 국가적 손실 막으려면 "상법 改惡 막고 경영판단원칙 제도화"

2025-03-19     서은정 기자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 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한석훈 국민연금 투자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경영 판단의 실패를 이유로 과도한 법적 책임을 부담하면 혁신적인 투자나 기술 개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상헌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경영 가치 체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빠르게 움직이고 혁신하라'(Move Fast, Break Things)다. 이는 기업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경영판단원칙이 확립돼 있어 경영진이 보다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특히 배임죄가 존재하지 않아 기업 경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형사 처벌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으로만 다룬다. 이 같은 제도적 배경은 기업 경영진이 더욱 적극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기술 혁신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한국에서도 기업 경영판단의 임무위배 판단 기준을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경영판단의 실패가 민사상 손해배상배상책임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배임죄로 의율되어 형사처벌의 대상도 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열린 '기업·주주 상생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열린 토론'에서 기업 경영 판단이 과도한 형사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상법이 원칙적으로 주주 보호 의무를 선언하고 있지만, 실제 개정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특히 그는 기업 경영 판단이 과도한 형사책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특별배임죄 폐지 또는 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해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경영판단원칙과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또 기업 현장에서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주 보호 이행 절차를 자본시장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 결정을 앞둔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의 고민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독일 등에서 인정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로서의 경영판단원칙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대법원 판례(2006다33333)를 보면 이사의 경영판단 책임을 평가하면서 "이사가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 조사하고 검토하는 절차를 거친 다음 (중략)", 그뿐만 아니라 "그 (경영판단)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것"이라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을 모르는 법관이 사실상 경영판단 내용의 합리성까지 판단하고 있어서 무늬만 경영판단원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한 교수는 "최근 법원은 이재용 회장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개인적 이익만을 위한 합병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며 "만약 이러한 판결이 당시 나왔다면 한국이 ISDS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연합뉴스

이재용 회장이 최근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도 합병 후 10여 년 동안 여러 건의 관련 민·형사 사건을 법원이 판단하면서 그 합병의 정당성 여부에 관하여 상반된 판결이 있었던 것도 경영판단의 내용인 합병의 정당성 판단에 사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앞서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기한 합병무효의 소에선 합병비율이 정당하다고 보아 삼성이 승소했지만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형사 판결에선 합병비율이 부당하다고 보아 배임죄 유죄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위 이재용에 대한 무죄판결 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 캐피탈이 제기한 ISDS 중재 판정에서는 "형사 판결이 민사 판결보다 더 엄격한 증거를 요구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위 홍완선 사건의 형사판결에 따라 국가가 패소함으로써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 결과가 되었다.

한석훈 국민연금 투자정책위원회 위원장은 "만약 이재용 회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 좀 더 일찍 나왔거나 홍완선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더라면 한국이 ISDS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국가의 부가 외국계 헤지펀드에 유출되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라고 했다.

변호사·검사를 역임한 한 위원장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15년간 상법과 비즈니스범죄를 강의해 온 기업범죄 전문가이다. K-밸류업 인터뷰 마지막 주자로 나선 한석훈 위원장은 "현재 한국 기업 환경에서 '경영판단원칙'이 충분히 도입되지 않은 이유는 국내 판례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판례는 경영 판단의 절차적 사항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심사한다"며 "경영진이 경영판단에 실패하여 기업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경영판단의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했는지 여부까지 검토해 경영진이 임무에 위배했는지를 판단하고 있고, 그 판단에 따라 경영진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형사 수사도 받게 되므로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영 활동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즉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같이 경영판단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해 기업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기업이 경영 판단의 실패를 이유로 과도한 법적 책임을 부담하거나 소송이나 수사에 시달리면 우수한 경영 인재를 영입하기 어렵고 혁신적인 투자나 기술 개발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도 경영판단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영진이 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경영하도록 돕는 것이 국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은 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지난 13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연합뉴스

―상법 개정 논란이 정국의 한 중심에 놓였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논란, 문재인 정부 시절의 공정경제 3법에 이어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할 것인지가 논란이다. 이번 사태 역시 반기업 심리를 자극하면 표가 될 것이란 정치권의 착각에서 비롯된 해프닝 아닐까.

"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는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면서 손해를 본 일반 주주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면 다수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법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해한 데서 비롯된 논란이라 생각한다. 단기적으론 주주를 위한다는 착시효과를 주어 정치적 득표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정작 개별 주주의 이익보호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법령에 있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주주 대표 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이 개정론자의 대표적 주장이다. 반면 이재용 회장은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분들께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주주 대표소송은 위 상법개정안과는 무관하게 현재도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현행 상법은 주주평등원칙을 통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고 회사의 이익 보호를 통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으며, 상법개정안이 입법되더라도 개별 주주의 이익보호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 시비는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첫 이슈였으므로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었던 홍완선이 청와대 압력으로 이재용에게 유리한 합병안이 부당한 합병비율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으로 하여금 찬성하게 했다는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는 박근혜 정권 퇴진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근거로 해외 헤지펀드 엘리엇은 ISDS(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지난 2021년 11월 15일 스위스 제네바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열린 국가-투자자 간 소송(ISD)의 중재 심리에서 한국측 변호인이 발언하고 있다. /법무부

반면 최근 법원은 이재용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위 합병은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합병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만약 이러한 판결이 당시 ISDS 중재판정의 심리종결 전에 나왔다면 한국이 ISDS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비율과 관련하여 주식가액 산정 방식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상장회사의 합병비율 산정 시 자본시장법령에서 시장가치를 반영하여 주식가치를 정하는 기준시가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기에 합병 당사자는 그 범위 내에서 합병가액을 협의해서 정할 뿐 임의로 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삼성물산 합병도 그 법령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식가치 산정 시 자산가치를 반영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면 자본시장법령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지 상법개정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부는 합병·분할 등 조직재편 시 기준시가 법정주의를 폐지하고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공시를 의무화하는 등의 자본시장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치권에선 경영판단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상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재명 대표에 이어 최상목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표적이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상법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판례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페이스북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는 국내 판례가 '경영판단원칙'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논쟁으로 보인다. 글로벌 스탠더드로서의 경영판단원칙이란 이사 등 경영진의 경영판단이 실패로 끝난 경우에 경영진의 임무위배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1차적 심사대상을 충분한 정보수집 등의 절차적 사항과 회사의 최대이익을 위한 판단이었는지 등의 주관적 사항에 한정하고 경영판단의 내용은 1차적 심사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경영진에게 경영판단의 안전항(safe harbor)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경영실패를 두려워하여 소극적 경영만 하다가 회사가 경쟁력을 잃고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은 이 원칙을 각각 판례법과 성문법으로 발전시켜 경영진이 적절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처음부터 경영 판단의 절차뿐 아니라 내용까지 심사해 경영진의 임무위배 여부를 판단하고 있고, 배임죄까지 적용해 경영 실패 시 형사 처벌까지 가능하게 한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임무위배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판례는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미필적 고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다 보니 임무위배가 과실에 불과한 경우에도 재판부의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에 따라 유죄·무죄가 번복되는 현상이 적지 않게 생긴다.

미국은 투자회사법(Investment Company Act) 등 특정 법률에는 배임과 유사한 개념이 있으나 한국처럼 형법상 일반적인 배임죄나 업무상 배임죄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임죄를 명문으로 규정한 나라는 독일, 한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 한정된다.

미국에서는 경영 실패로 인한 이사의 책임이 발생하더라도 형사 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이 원칙이다. 형사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사기적 요소 즉 기망적인 수단을 사용했을 때 사기(Fraud) 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임무를 위배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하는 배임죄 규정은 없다.

이 같은 차이로 한국에서는 경영 실패가 발생할 경우 주주 등의 고발에 따라 경영진에 대한 형사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가 많다. 상법개정안은 이사가 충실의무나 직무상 주의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위하여도 부담한다는 것으로 개정함으로써 마치 개별 주주들의 이익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별 주주들의 이익은 지배주주, 소액주주, 기업가주주, 투자자주주, 기관투자자, 일반투자자 등 투자의 목적과 유형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상법개정안에서 말하는 '주주'란 총주주를 말하고, 이사가 어떤 경영판단을 함에 있어서 추구해야 하는 이익은 총주주의 단체적 이익을 말하는 것이지 주주들의 개별적 이익이 아니다. 총주주의 단체적 이익은 곧 회사의 이익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국내외 판례나 입법의 일반적 입장이다.

따라서 상법개정안은 정작 개별 주주의 이익은 보호하지 못하면서 마치 주주의 개별적 이익도 모두 보호하는 것과 같은 착시효과만 줄 뿐이고, 이를 오해한 개별 주주들의 민·형사상 소송제기 등 분쟁만 증가시킬 뿐이다.

개별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합병·분할 등에 관한 자본시장법 등에서 제도 별로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주식평가에 관한 기준시가 법정주의의 개편,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의 신주 우선배정권 등의 구체적인 주주 보호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상법개정안의 입법화로 초래되는 민형사상 분쟁의 증가는 이사 등 경영자로 하여금 적극적인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상법개정안은 철회하든 안 하든 독일처럼 상법에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해 기업 경영진이 과도한 소송리스크 없이 혁신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모펀드(PEF) 횡포가 난무하는 한국 자본시장에선 기업 경영권 보호 장치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절차적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주주 보호를 위한 조문이 현재 국내 상법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를 틈 타 주주행동주의 진영을 비롯해 영풍그룹의 장형진 고문과 합세해 고려아연 적대적 인수를 노리는 MBK파트너스까지 개정을 주장한다. 법원이 회사와 주주를 분리해 보고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상법 제401조)에 대해선 회사의 손해에 수반하는 주주의 피해는 간접손해로 보는 경향이라는 반론은 어떻게 보나.

"물론 과거에는 주주 보호 규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았으나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고 최근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들 수 있다. 회사가 이사의 임무 위배로 인해 손해를 입었을 경우 회사는 해당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회사가 자사 CEO 등 이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주주 입장에서는 간접손해에 해당하므로 직접 이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일정 비율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회사를 대신하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대표소송 제도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일정 자금력을 갖춘 펀드들이 중심이 되어 이를 많이 활용하는 추세다. 그 밖에도 개별 주주는 회사를 대신하여 이사의 임무위배를 이유로 배임죄로 형사고발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사의 임무 위배로 개별 주주가 직접 입은 손해는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 규정에 따라 주주가 직접 이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으로서 현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K-밸류업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밸류업과 관련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협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방향이 효과적일지.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주식이 저평가되는 원인을 기업 지배구조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책임투자원칙)를 활발하게 적용해 가면서 주주 환원율(배당 및 자사주 매입)이 높아지고 이사회의 책임성·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가치의 장기적인 저평가는 지배구조보다는 기업의 경쟁력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특히 적극적 경영을 통한 기술혁신이 필요한 요즘 CEO의 독립적 경영 판단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배주주가 CEO를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혼동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CEO가 지배주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경우에는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이사가 회사의 이익과 충돌하는 충실의무 위반의 경우에도 경영판단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문제와는 별개로 CEO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적극적 경영 판단을 지원하는 경영판단원칙의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매력도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속되고 있다. 혁신투자를 가로막는 법제도가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인 투자자 유입 확대 및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금융·자본시장 차원에서 어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현재 경제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기술 혁신이 필수이다. 기업은 한강 위를 떠다니는 오리에 비유할 수 있다. 겉으로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물속에선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 그나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소극적인 경영은 결국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치열한 기업 간 경쟁에서 낙오하게 만든다.

삼성전자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도하던 기업이 10년 넘게 사법 족쇄에 묶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 회복이며 이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밸류업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면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을 기업의 지배구조에만 두고 상법개정안만 제시하며 기업의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소극적인 지금의 접근 방식은 크게 잘못돼 있다."

여성경제신문 서은정 기자 sej@seoulmedia.co.kr

※ 아래 안내표를 클릭하면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개정 논란'을 주제로 오는 3월 20일(목) 오전 8시 30분부터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리는 제9회 여성경제신문 금융포럼 사전 신청 등록페이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