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섣부른 ‘핵무장론'이 美 민감국가 지정 불렀나···4세대 원자로 차질 불가피
尹 “자체 핵 보유” 발언에 국힘 의원 가세 핵개발 분위기 조장에 미국의 견제 차원 파이로프로세싱, 4세대 SMR 개발 차질
미국 에너지부(DOE)가 ‘민감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추가한 것을 두고 각종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국 내 핵 개발 필요성이 조장되는 분위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 차원의 조치라는 해석이 미국의 소식통을 통해 전해졌다.
DOE는 한국과의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새로운 제한은 없다고 해명하지만 4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이나 파이로프로세싱 등 미국의 기술 및 인력 협력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비관적 전망이 가세한다.
미국의 한 고위 외교 소식통은 17일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한국을 추가한 배경은 한국 내 정치계와 언론계에서 핵 개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대한 안보 차원에서의 견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DOE가 특정 국가를 민감 국가로 분류하는 이유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역내 불안정,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한국에 해당하는 사유는 핵 비확산 문제로 좁혀진다. 한국 내 핵 개발 필요성이 조장되는 분위기에 대한 미국의 견제 차원의 조치라는 이런 입장은 그간의 주류 해석을 뒤집는다.
DOE는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만 전해왔을 뿐 한국을 목록에 추가한 이유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심판 등 불안한 국내 정치 정세 때문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컸다.
그간 국내 보수진영 내에서 ‘북핵에 맞서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렇게 되면 한미동맹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을 두고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불씨를 당겼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다음해인 2023년 1월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를 통해 “더 (북핵) 문제가 심각해져가지고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며 자체 핵 무장 가능성을 말했다. 이 무렵 일부 국내 여론조사에서는 핵 무장을 찬성하는 비율이 70%가량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발언 이후 이를 지지하는 국내 여론이 높은 것을 미국이 심각하게 우려해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실제로 당시 미국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한국인의 70% 이상이 핵무장을 원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우려했다.
국회의원들도 독자적인 핵 개발을 통해 적어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 갖춰야 한다고 공식석상에서 줄곧 강조해오며 이에 가세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여론조사 직후 “당 대표가 된다면 핵무장론은 당론으로 정하고 당 차원의 보다 세밀한 정책적 준비,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국제 정세를 반영한 핵무장’ ‘평화를 위한 핵무장’ ‘실천적 핵무장’이라는 핵무장 3원칙까지 제시했다.
오 시장도 “북핵 대응을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다양한 자체 핵능력 개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역설적이게도 유력 정치인 간에 활발한 (핵개발) 논의 그 자체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는 주변 4강 외교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이 적어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갖춰야 한다"며 "정부는 물밑으로 핵옵션을 협상 카드화하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했다.
이러한 국내 분위기로 인해 전 세계 전문가 중 상당수가 한국이 10년 내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글로벌 예측 2025’ 자료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내 핵무장 가능성 큰 국가’ 조사를 통해 1위 이란(72.8%), 2위 사우디아라비아(41.6%)에 이어 3위를 한국(40.2%)으로 꼽았다.
현재 한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비핵 보유국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대신 원자력 발전을 위한 기술만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2003년에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여 국제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 NPT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핵군축과 평화적 핵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 조약으로, 한국이 자체 핵무장 노선을 정한다면 NPT를 탈퇴해야 한다.
천연 상태의 우라늄은 대부분 우라늄-238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약 0.7%만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특성을 지닌 우라늄-235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우라늄-235의 비율을 2~5%로 높인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지만 만약 이를 90% 이상 높이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
SCL에 한국을 추가한 미국의 속내가 한국의 핵 보유에 대한 ‘불안’과 ‘견제’인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면서 “양국간 에너지·원자력·핵 정책 관련 협력은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미국 측의 입장과 달리 원자력 기술 진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황일순 UNIST 석좌교수는 말을 아끼면서도 “3세대 원전은 무방하겠지만 용융염원자로(MSR), 소듐냉각고속로(SFR) 등 4세대 SMR, 원전 개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미국이 물이 아닌 가스, 용융염, 액체 금속 등 다양한 물질을 냉각재로 사용해 안정성과 핵연료 사용 주기를 높이는 4세대 원자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이에 비해 한국은 현재 4세대 SMR 개발 경쟁력에 뒤처졌다는 평가다.
파이로프로세싱도 DOE 협조 없이 이뤄지기엔 어려움이 있는 건 매한가지다. 연구에 필수인 특수 설비(핫셀)를 DOE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아이다호 연구소는 사용후핵연료(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남은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을 10년 이상 함께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