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은 질주하는데 韓 자율주행은 '족쇄'···국회선 뒤늦은 규제 완화
사람·사물 모자이크 규제, R&D 발목 잡아 미·중, ADAS L2+ 넘어 L3 상용화에 속도 현대차, 美 스타트업과 자율주행 공동 개발 "韓 기술력 중국보다 4~5년 뒤처져 있어"
국회가 자율주행차 연구·개발(R&D)에 한해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한다. 그동안 제약으로 작용했던 개인정보 처리 규정이 완화되면서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0일 자동차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토 교통위원회 소속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자율주행 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법 개정안'을 이번 주 내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자율주행 자동차 제작사가 시스템의 성능 및 안전성 향상을 목적으로 특정 개인정보가 포함된 영상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익명 또는 가명 처리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현재 자율주행 개발에는 보행자의 시선과 움직임 분석이 필수적이지만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인해 영상 속 사람이나 사물을 모자이크·블러(가림) 처리해야 했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일부 원본 활용을 허용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원본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해당 업체는 외부 네트워크 차단, 암호화된 전송망 사용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공유가 어려워 개발 효율성이 크게 저하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국 자율주행 산업협회 관계자는 "수백 명의 개발자가 외부망이 차단된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데이터 용량이 클 경우 복호화(암호화된 데이터를 원래 형태로 변환)하는 데만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뒤처져 있던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년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2022년도 정보통신기술(ICT) 수준 조사 및 기술경쟁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미국 대비 89.4% 수준으로 평가됐다. 유럽 연합 (98.3%), 중국(95.4%), 일본(89.7%) 등보다 낮았다.
자율주행의 핵심은 데이터다. 인공지능(AI)가 다양한 도로 환경과 주행 패턴을 학습하려면 방대한 실도로(Real-World) 데이터 수집이 필수적이다. 이에 미국과 중국은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며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무간섭(Hands-off) 접근 방식'을 통해 자율주행 시장을 키우고 있다. 현재 22개 주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가 가능하며 업계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하는 대신 위반 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구조다. 중국은 2017년부터 자율주행을 국가 AI 전략의 핵심 분야로 지정하고 3만2000km에 달하는 공공도로를 개방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자율주행 경쟁은 완전한 자율주행(L4 이상)이 아닌 고급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ADAS는 △L0~L2 (운전자 보조 시스템) △L3 (조건부 자율주행) △L4~L5 (완전한 자율 주행)으로 나뉜다.
지난달 비야디(BYD)가 전 차종에 탑재한다고 발표한 '신의눈(天神之眼)' ADAS는 L2+급 지능형 주행 시스템이며 테슬라 역시 '완전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를 공개했지만 현재 기술 수준은 L2~L2+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L2 수준에서 한 단계 높은 L3(조건부 자율주행)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완전 자율주행(L4) '로보택시'를 운영 중인 바이두를 제외하면 대부분 L2 단계에서 보급이 진행되고 있다. 위청둥 화웨이 스마트카 설루션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L3 상용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테슬라 역시 올해 6월부터 FSD를 탑재한 로보택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 자동차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에 대해 "한국의 자율주행 및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 수준은 중국보다 4~5년가량 뒤처져 있다"며 "현재 한국은 레벨 3조차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못한 상태로 일반 도로에서 승용차 자율주행이 도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율주행을 개발하는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 강남에서 자율주행 시험 주행을 진행했으며 현재 경기도 성남 판교에서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율주행 개발이 '시험 주행'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상용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법적 제도와 도로 인프라 미비로 인해 자율주행 시범 사업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는 해외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지난 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대차가 미국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에이브이라이드(Avride)와 자율주행차 공동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을 통해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한 아이오닉 5를 에이브이라이드에 제공하고 에이브이라이드는 해당 차량에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해 개조할 예정이다. 또한 제휴를 맺은 우버의 로보택시 서비스에도 투입될 계획이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그동안 테스트베드 부족과 규제 중심의 정책으로 인해 자율주행 개발이 제한적이었다"며 "이번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 조치는 빅데이터 확보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를 시작점으로 보험 등 책임 소지에 대한 체계적인 규정을 마련하고 신기술을 시장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