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전공의 수련 환경 "출산 직전까지 연속 36시간 근무"
10일 '전공의 수련 환경·처우 개선' 토론회 개최 사직 전공의 "혹독한 근무 환경에 교육은 부실" 근무시간 단축·수련비 지원 등 제도 개선 시급
전공의 수련 환경 실태를 토로하고 이에 대한 정책 방향성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사직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는 과중한 근무시간과 열악한 교육 환경을 지적하며 근로 시간 단축,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국가 차원의 수련 비용 지원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0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전공의 수련 환경 및 처우 개선을 주제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가 개최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국회 입법조사처·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열악한 수련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1년 넘게 지속된 의료 대란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전공의들은 근로자면서 동시에 피 수련자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2년 실태조사 결과 전공의들의 평균 근무 시간은 주 77.7시간이며 52%가 법적으로 허용된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실제로 주 120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례도 많다”며 전공의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들이 병원의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교육 중심의 수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전공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병원과 교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전공의들의 참여를 대폭 확대해야 하며 독립적인 기구로 개편해야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의료 사태로 인해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들도 토론회에 참석해 병원에서 겪었던 수련 환경 실태를 털어놨다. 김은식 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는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공의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임신한 전공의조차 야간 당직과 36시간 연속 근무를 강요받고 있으며 법적 보호는 전무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 확진 후에도 병원 측의 강요로 주당 110~120시간을 근무해야 했다”며 “법에서 정한 주 80시간 제한이 ‘상한선’이 아니라 ‘기본값(default)’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최소한의 근무시간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준영 전 순천향대병원 전공의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며 “내과 전공의로서 외래 진료를 독립적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외과 전공의들은 주요 수술을 단독 집도할 기회조차 없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필수 의료 분야에서 제대로 된 전문의를 배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은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기동훈 중앙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조동찬 전 SBS 의학전문기자, 임사무엘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 방영식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전공의들의 근로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정부의 재정 지원 부재가 꼽혔다. 기동훈 교수는 “미국은 연간 9조원 이상, 일본과 영국도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지만 한국에서는 병원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어 법적 보호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OECD 국가 중 전공의 수련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으니 병원들은 전공의들을 값싼 인력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공의 처우와 의료 질 향상을 위해 국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근로기준법과 전공의법이 혼재된 상태에서 병원들이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적용해 전공의들에게 무한 노동을 강요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찬 전 SBS 기자 역시 전공의 근무 환경이 국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공의들의 과로는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전공의들이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하는 환경에서는 합리적인 의료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이는 결국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축사를 맡은 김택우 의협 회장은 “현재 전공의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특히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전공의들의 참여를 과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과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의료 개혁을 위해서는 균형 있는 접근과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