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성의날] ⑤ "여자는 늘 조심해라?"···연이은 살인·성폭력에 안전 위협
여성혐오 범죄 법적 규정 없어 모르는 남성 접근 불안감 증폭 교제 폭력, 반의사불벌죄 한계
최근 여성 대상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며 여성들의 안전과 생명권 보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스토킹과 묻지마 살인 등 강력범죄의 잔혹성이 알려지며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 사회는 아직도 여성이 혼자 돌아다니기에 안전지대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묻지마 살인을 작정한 이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을 노린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충남 서천에서 40대 여성 A씨는 지난 3일 새벽께 인도를 산책하다 처음 보는 3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졌다. 경찰에 붙잡힌 B씨는 "최근 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 너무 큰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세상이 나를 돕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30세 남성 박대성이 일면식 없는 17세 여성을 흉기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2024년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을 기준으로 지난 15년간 총 3058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으며 주변인을 포함하면 총 3773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건수 중 일면식이 없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 피해자는 주변인 포함 총 187명으로 한국여성의전화에 집계됐다. 전 연령대에서 사례가 발생했으며 20대가 41명(34.17%)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 분석 보고서에서 집계된 16명보다 156.25% 증가한 수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이 93%로 대다수였다. 피해 유형 중 가장 많은 것은 강제추행(준강제추행 포함)으로 36.1%였다. 이어 강간 및 강간미수(33.2%), 카메라 이용 촬영(9.3%) 순이었다.
여성들 사이에선 모르는 남성의 접근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최근 X(구 트위터)에서 한 유저가 배달 기사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배달노조 라이더유니온에 가입하셔서 권리를 찾으세요'라는 글을 썼는데 배달 기사로부터 "오는 길에 다리를 다쳤다. 1층까지 한 번만 내려와 주실 수 있냐"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을 올린 유저는 '바로 1층으로 내려가 택배를 수령했으며 메시지를 적어놓길 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용 글에는 "여자들은 (메시지 작성 같은 행동을) 하지 마"라는 우려 섞인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칫하다 범죄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을 표현한 것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 제1호는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여성가족부가 2022년 12월 1일 공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 안에는 ‘여성폭력’ ‘젠더폭력’ ‘성별에 기반한 폭력’ 등의 용어가 모두 빠졌다. 대신 ‘폭력’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문제는 이후에도 여성혐오 범죄가 발생해 상황은 더 악화했다는 점이다. 2023년 11월 경남 진주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성을 일면식도 없던 20대 남성이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는 단순히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맞아 청력을 손실해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정신적·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현행법상 여성에 대한 증오를 동기로 하는 여성혐오 범죄는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성범죄, 성매매, 가정폭력, 스토킹 등 개별 법률에 따라 가해자 처벌(법무부) 및 피해자 보호(여성가족부)가 이뤄진다. 진주 편의점 폭행 피해자는 범죄 피해자 지원을 받을 때 ‘여성 폭력’ 피해자가 아닌 ‘상해’ 피해자로 분류됐다.
이에 지난해 10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5만여명이 여성혐오 범죄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가중처벌 할 수 있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5개월째 상임위원회 계류 중이다. 청원을 심사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이를 두고 '혐오'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현행 사법 체계와의 조화 여부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현재 교제 폭력은 폭행, 협박, 감금 등 '뚜렷한 폭력 행위'에 대해 형법을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과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스토킹 피해 입증이 어려운 경우 데이트 폭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교제 폭력에서 많이 나타나는 폭행·협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교제 폭력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함에도 피해자의 가해자 처벌 의사를 사건처리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어 경찰 초동 대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김희서 전 정의당 대변인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성별 관련 '갈라치기'라든가 어떤 젠더 갈등을 야기하는 정치들도 여성 폭력을 방치하는 축이 될 수 있다"며 "단순한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안전한 사회를 위해 근본적으로 여성 인권 보장과 차별을 없애는 데 더 노력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올해 여성의 날 주제는 '더 빠르게 행동하라'다. 이는 성평등을 향한 변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임을 의미한다"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든 폭력은 엄중히 처벌되어야 하며, 피해자 보호 장치도 강화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