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⑩ 무늬만 스튜어드십 국민연금이 韓 주식 사도록 하려면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 인터뷰 적극적 투자 가로막는 5%·10%룰 개선 필요 연금의 사외이사 추천이 경영 간섭이란 오해 기금운용본부도 의결권 방향 사전 공시해야

2025-03-07     서은정 기자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은 정부와 국민연금의 협력을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활용하고 해외 연기금 사례를 참고해 주주가치 제고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평가절하 문제를 겪어왔다. 이에 대해 1150조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도 자유롭지 않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매입한도 설정 제도는 1999년 처음 도입된 이후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쳐왔다. 2011년에는 기금 자산 대비 국내주식 비중을 3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 도입됐으며 2014년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비중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기금운용위원회에 부여됐다.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강화됐고 2021년엔 국내주식 목표 투자 비중을 16.8%로 설정하며 글로벌 분산 투자 기조로 전환됐다. 이 결과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12%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상당한 자금이 미국 주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 정책의 일환으로 공적 연기금(GPIF)이 일본 주식 비중을 12%에서 24%로 확대하고 중앙은행이 주식을 매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밸류업 정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다만 한국의 경우 2041년부터 연금 지출이 수입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며 2057년에는 고갈 가능성이 제기돼 향후 주식 매도에 따른 충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여성경제신문이 K-밸류업 릴레이 인터뷰를 위해 이연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을 만났다. 근로자단체 추천인 이 위원은 국민연금 소속 전문위원회 중 유일한 여성위원으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시 상장사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고려하도록 지침 개정을 이끈 인물이다.

이 수책위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기업 밸류업을 위해선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위축시키는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 개념을 경영권 분쟁 상황과 구분해 명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ㅡ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K-밸류업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나. 특히 밸류업과 관련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협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방향이 효과적일까.

"밸류업 프로젝트는 한국 기업의 가치제고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여 한국 증시 재평가를 유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책적 접근은 유의미하다.

정부와 국민연금의 협력 방안과 관련해선, 국민연금은 주주로서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수탁자 책임 활동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기업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ESG 경영 촉진을 위한 평가 기준을 공유하며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목표로 하는 투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해외 연기금 사례를 참고하면서 주주가치 제고 전략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업 역시 각 기관이 제공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며, 특히 K-밸류업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한 정책보다는 기업의 내재가치 성장을 중점적으로 고려한 단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추진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월 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방향 논의를 위한 세미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을 위한 운영 개선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ㅡ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밸류업으로 어떻게 이어지나. 만약 영풍과 고려아연처럼 지주사와 계열사 간 경영권 분쟁처럼 밸류업과 무관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오히려 부담이지 않을까.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와 관련해 국내 주식시장의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도입했고, 2019년에는 적극적 주주 활동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 개념이 포괄적이고 명확하지 않아 주주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공적 연기금에 대한 단기매매차익 반환 규정과 관련해선, 2020년 법 개정을 통해 정보교류 차단 규제(차이니스월)가 기본 원칙만 정하고 회사 스스로 규율하는 사후 감독 중심으로 개편됐는데도 여전히 과거 법령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러한 점이 적극적 주주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보다 유연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상 5% 룰 및 10% 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대상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행사 기준을 명확히 수립해야 한다. 또 주주총회 이전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수책위처럼 (기금운용본부 결정 사항도) 사전 공시해 주주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의결권 행사 내역에 대한 통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이 국내 주식시장의 바람직한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 설치돼 있는 안내판 /이상헌 기자

ㅡ'5% 룰'과 '10% 룰'이 국민연금의 주주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지만 재계에서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조기 경보체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규제가 완화될 경우 국민연금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경영 간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최대 투자자이지만 본질적인 목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통해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역할은 기업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는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차원의 접근이라고 본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인데 해외에서는 국내법상 5%·10% 룰과 같은 제약이 없다. 그렇기에 해외 기업의 경우보다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통해 기업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반면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제한을 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범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확대될 수 있다. 첫째, 지배권 취득 목적이 아닌 경우 사외이사 선임 등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제안권 확대가 가능하다. 둘째, 공동보유 개념을 완화하여 기관투자자들 간 협력 강화를 촉진할 수 있다. 셋째, 단기매매차익 반환 규정이 개선될 경우 내부 통제 시스템을 보다 유연하게 구축할 수 있어 적극적인 투자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기업 경영간섭이라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현재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중립적 입장에서 전략적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도 가능하다는 점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지난 2월 20일 이연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이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ㅡ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기업 생태계에 충격을 던져주지 않을까.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권 행사가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다소 과도한 걱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행동주의 펀드 등에서도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을 추천하는 사례가 많고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지배권을 취득하려는 것이 아닌 '견제'와 '균형'을 갖춘 절차를 통해 기업의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는 역할에 가깝다. 따라서 사외이사 추천 시에는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외부 전문가 중심의 심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 글로벌 기준을 참고해 추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해당 기업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투명한 절차를 거친다면 경영권 침해가 아닌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하다."

ㅡ국민연기금에 자율규제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적절하다고 보는지.

"2020년 폐지된 공적 연기금의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 면제와 관련한 규정과 관련해 공적 연기금이 단기매매차익 반환 의무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인정하는 엄격한 정보교류 차단장치(Chinese Wall) 구축이 필요하다. 이는 연기금의 내부자거래 및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만 현재는 공적 연기금들이 자체적으로 투자 관리 체계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증선위의 인정 요건은 법상 폐지된 조항으로서 연기금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투자자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공적연기금들이 자체적인 정보교류 차단 정책을 수립·운영하고 내부통제기준에 정보교류 차단 관련 사항을 포함하는 등 내부통제기준을 강화하고 중대 위반사항 등에 따른 보고 체계 마련 등의 자율규제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연기금의 자율성 및 업무 효율성이 제고될 것이다. 현재 단차익면제 인정을 받기 위해 매년 증선위 감사를 받고 있는데 이는 상당한 행정력 낭비 및 국민연금의 적극적 수탁자 활동을 저해하게 되는 요소로 작동되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센터빌딩에서 열린 국내 최초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NXT)' 개장식에서 김학수 넥스트레이드 대표 등 주요 참석자들이 개장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ㅡ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되었고 공매도도 재기를 앞두고 있다. 또 이번 주부터 국내에서도 넥스트레이드란 대체거래소(ATS)가 등장해 거래소도 경쟁 체제가 시작돼 주식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높다. 한국거래소(KRX)가 도입해야 할 선진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증시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증권거래세는 주식 거래시 발생하는 거래비용으로 투자자들의 거래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해외 선진국들의 경우 대부분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거나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증권거래세 폐지는 거래 비용 감소로 시장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투자자들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세수 감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단계적 인하나 대체 재원 마련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ATS와 관련해선, 해외 사례를 참고해 거래상품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은 거래소와 ATS의 거래상품을 구분하지 않고 '주식 옵션을 포함한 증권', 유럽은 '파생상품을 포함한 금융상품', 일본은 '유가증권'으로 명시하고 있어 다양한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 한국도 다양한 시장의 수요에 부합하고 ATS의 경쟁력 및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상품 허용범위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ㅡ현재 한국의 주가지수는 2500 수준이다. 현재의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볼 때 다른 모든 법적 정책적 측면이 이상적으로 구비된다면 한국의 주가지수는 어느 정도가 정상이라고 보시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나눠보자면 코스피가 처음으로 2000포인트를 넘은 것이 2007년 7월 25일이다. 당시 2004.22포인트를 기록했다. 또 한국 시장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10~11배로서 글로벌 시장 대비 상당히 저평가돼 있고, 코스피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9배 수준으로 1배 미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증시의 PBR이 글로벌 평균(1.5~1.8배)으로만 개선돼도 단순 계산으로 코스피 3200~3500포인트는 가능할 수 있다. 한국 증시는 글로벌 대비 지표 중에서 거의 저평가돼 있으므로 법제도 개선 및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주주권(활동) 행사 강화, 증권거래세 폐지, 기업들의 글로벌 ESG 기준 강화 등의 개선이 있다면 코스피의 상승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용어해설 :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

기업의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지표인 PBR(Price to Book-value Ratio)은 '주가/주당순자산가치(BPS)'로 구해진다. 주식시장에선 기업의 저평가 또는 고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되는데 PBR이 1이면 시장가치와 장부가치가 동일하다는 의미이고 1보다 낮으면 기업이 시장에서 장부가치 이하로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PER은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 정도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가총액/당기순이익'이란 산식으로 구해져 PBR과 동조 현상을 보인다. 주식가치는 본질적으로 해당 기업이 얼마나 많은 당기순익을 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놓은 지표인데 제조업이 정보통신기술업종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성경제신문 서은정 기자 sej@seoulmedia.co.kr

※ 아래 안내표를 클릭하면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개정 논란'을 주제로 오는 3월 20일(목) 오전 8시 30분부터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리는 제9회 여성경제신문 금융포럼 사전 신청 등록페이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