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성의날] ④ 아빠는 기저귀 못 갈아?···기저귀 교환대 없는 남자 화장실

여성 전담 육아 관행 반복 가족 화장실 확대 목소리

2025-03-07     김현우 기자, 김정수 기자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A 백화점 여성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정부 공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녀 화장실 모두에 교환대가 있는 곳은 525곳이었지만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은 575곳으로 남성 화장실(23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김정수 기자

직장인 김현중(33) 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이면 가족과 인근 나들이를 가는게 취미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그를 매번 난감하게 만든다. 아이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 공간이 남자 화장실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동행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자 화장실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경우가 많아 결국 아내가 '기저귀 미션'을 떠맡는다. 김 씨는 "혼자 외출했을 때 남자 화장실에 교환대가 따로 없어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말하면서도 진땀이 난다"고 했다.​

남성의 육아 참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공공장소의 기저귀 교환대는 여성 화장실에 집중되어 있다.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이들의 인식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여성경제신문이 정부 공공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의 개방형 및 공중화장실 3708곳 중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된 곳은 1123곳(약 30%)에 불과했다. 남녀 화장실 모두에 교환대가 있는 곳은 525곳이었지만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곳은 575곳으로 남성 화장실(23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를 합산하면 여성 화장실(1100곳)이 남성 화장실(548곳)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한 역사 내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김정수 기자

법적으로 2010년 2월 4일 개정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공중화장실에는 남성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직장인 정명식(33) 씨는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가 없어 건물 내 몇 개뿐인 수유실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 기저귀 하나 갈려고 건물 전체를 뒤지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부모들은 쇼핑몰처럼 가족 화장실이 있는 곳을 선호하는 추세다. 남녀 모두 이용할 수 있고 기저귀 교환대까지 갖춰진 가족 화장실이 있는 쇼핑몰이나 고속도로 휴게소는 비교적 이용이 편리하다. 이마저도 모든 공간에 마련된 것은 아니다.​

육아 전문가들은 정책과 시설이 변화하는 육아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박주민 육아발달연구원 종합지원본부장은 여성경제신문에 "결국 인식의 문제"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 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는 예산을 지원하기는 어렵지만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자체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기저귀 교환대 하나 설치하는 데 약 100만원이면 충분한데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이들은 정작 육아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는 연령대가 많다"고 꼬집었다.​

일본 오사카시 미나미모리마치역 인근 한 쇼핑몰 남자 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일본은 '이쿠맨(育メン) 프로젝트'를 통해 남성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남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족 화장실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신축된 쇼핑몰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는 가족 화장실이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공기관이나 대중교통 시설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디다.​

이성미 여성인권보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북유럽에서는 가족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아빠, 엄마뿐만 아니라 조부모도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양육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남성도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화장실 시설이 개선되는 추세다. 일본은 '이쿠맨(育メン) 프로젝트'를 통해 남성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요 공공시설에 남성 화장실 내 기저귀 교환대를 확대하고 기업들도 사내 시설에 남성용 수유실과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더욱 앞서 있다.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대부분의 공공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비치하고 있다. 가족 화장실 설치도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2016년 오바마 정부 시절 '베이비 체인지 법안(Baby Changing Facilities in Restrooms Act)'을 통해 연방 건물의 남녀 화장실 모두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주요 공항, 쇼핑몰, 레스토랑 등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확산되고 있다.

이성미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에 "남성 육아가 보편화된 시대에 여전히 화장실 내 기저귀 교환대가 여성 전용으로 설치되는 현실은 육아를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어 "기저귀 교환대 하나를 설치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시설 마련의 문제가 아니라 육아가 여성만의 역할이 아니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라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쪽 성별만의 몫이 아니다. 사회가 이를 인정하고 시설과 정책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육아의 부담이 공평하게 나누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