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⑨ 길 잃은 나침반 韓 증시···잃어버린 '꿈' 되찾으려면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미국변호사 인터뷰 정부 밸류업 정책, 주주 친화 정책에 그쳐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 등 근본 대책 필요 기업이 비전·희망 가질 수 있게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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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활황을 누렸지만 한국 증시는 소외됐다.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해외로 향하는 자금 흐름으로 이어졌고 국내 시장은 투자 심리 위축과 자금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지만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 위주라는 한계가 지적된다.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기업이 자유롭게 혁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주주가치 극대화와 함께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반영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제는 단기 주가 부양책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이 [2025 한국 증시 리부트: 밸류업] 금융포럼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
이번 달, 국내 증권 시장엔 중요한 변화가 찾아온다. 대체거래소(ATS)의 출범과 함께 공매도 재개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내일 도입되는 ATS는 한국거래소(KRX)의 독점 체제를 깨고 증권 시장의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자본시장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평균 수익률이 3% 수준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은행 이자가 평균 2%였던 시기를 감안하면 단 1% 더 벌기 위해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본시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클릭 한번으로 투자 국적을 바꿀 수 있는 핀테크 시대다. 자본시장 살리기를 위한 밸류업,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가 여전히 뜨겁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투자자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성장 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침몰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뒤처져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미국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는 인터넷 인프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영역"이라며 "미국과 유럽이 수백조 원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한국의 60조원 투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금융시장과 산업자본 전반을 융합하는 첨단기술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AI위원회엔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가 빠진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주 변호사는 "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에서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산업 발전을 총괄할 산업부와 금융 인프라를 조성할 금융위는 배제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을 거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자본시장분과 위원을 지낸 그는 "투자자들은 강한 비전이 없는 시장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을 조목조목 짚었다. 다음은 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ㅡ'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프로젝트 1년의 성적이 사실상 저조하다. 정책에 관여한 브레인으로서 총평을 부탁드린다.
"K-밸류업 프로젝트는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효과는 아직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주주 친화 정책을 통해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핵심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저평가된 가장 큰 이유는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소수주주 보호 부족, 예측 불가능한 정부 정책 등 구조적인 리스크 때문이다. 단순한 주주 환원 정책이 아닌 기업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또 정부가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숫자 맞추기' 식 정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불투명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곳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ㅡ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글로벌 시장 환경 때문이 아닌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주주 보호 미비에서 기인한 '코리아 리스크'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도 볼 수 없는 이유는 금융 시장이라는 건 리스크 대비 수익률인데 현재 한국 증시는 리스크가 너무 높다. 현재 한국 증시는 원래의 가치가 할인된 게 아닌 리스크 가득한 현 상황 그 자체가 시장가로 형성돼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관련 법 개정을 통한 소수주주 보호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인적 분할, 지배구조 개편 등을 통해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소수주주가 일정 비율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기업이 미래 산업 경쟁력과 연계한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과 유럽 증시에서 고평가받는 기업들은 단순한 재무 성과뿐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 한국 기업들도 이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ㅡ지금까지 밸류업 정책이 주주가치 극대화 논리에 지나치게 몰입한 결과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장부상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지속 가능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선 어떤 조치가 강구돼야 할지.
"단기적인 주주가치 극대화 정책은 결국 장기적인 기업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 특히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이유는 단순히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낮아서가 아닌 투자자 보호 장치 부족과 시장 신뢰 부족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한 주주환원 정책을 넘어서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AI, 반도체, 바이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R&D 투자 확대, 신성장 산업 지원 정책 등을 통해 기업의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외국인 유입을 위한 정책 재조정도 필요하다. 공매도 금지나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세금은 오히려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외국 자본 유입을 확대하고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ㅡ투자자들에게 '꿈'을 주는 산업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당장 필요한 정책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현재 AI 산업은 10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지만, 한국은 정부와 민간의 투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금융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AI 기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AI 관련 금융상품 활성화, AI 기업의 상장 요건 완화 및 투자 유치 지원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을 활용해 AI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ㅡ결국 산업 경쟁력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이 경제의 발목은 잡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코리아 리스크 중 하나라고 언급하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을 듯하다.
"독립적인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사외이사는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있어 실질적인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부 선진국처럼 소수주주가 선임할 수 있는 사외이사 할당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도 필수적이다.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보장해야 한다."
ㅡ한국거래소가 도입해야 할 선진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한국거래소는 글로벌 시장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대폭 감면이 필요하다. 한국은 주식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를 동시에 부과하는 이중과세 구조로 인해 투자자들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공시제도 개편도 병행돼야 한다. 기업이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보다 투명하고 신속한 공시를 의무화해야 하며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공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적 변화가 이뤄져야만 한국 증시가 정상적인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체거래소(ATS) 활성화 역시 당연히 필요하다. 3월부터 ATS가 도입되면서 한국 증시는 더욱 경쟁적인 구조로 변할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공정한 경쟁 체제를 보장하면서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공매도도 부활하는데 선진 금융시장에서도 필수적인 기능이다. 다만 불법 공매도를 방지하기 위한 보다 정교한 감시 체계가 작동한다면 지난해보단 밸류업 여건이 한층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ㅡ현재 한국의 주가지수는 2500 수준이다. 현재의 기업가치와 경쟁력이 동일하다고 볼 때, 다른 모든 법적·정책적 측면이 이상적으로 구비된다면 한국의 주가지수는 어느 정도가 정상 수준일까.
"만약 기업 지배구조 개선, 소수주주 보호, 세제 개편, 외국인 투자 유입 촉진 등의 정책이 제대로 정비된다면 4000선까지도 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이유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가 낮아서가 아닌,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투자 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예측 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선호한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이 되려면 상법 개정, 공시제도 개선,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등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