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성의날] ② 여전히 '예외'인 여성 리더, 왜?

남성 중심 조직문화의 벽 승진 앞 '유리천장' 여전 여성 리더의 길, '증명의 늪' 인사 평가 개선·인식 변화 절실

2025-03-05     김정수 기자
같은 능력을 갖췄더라도 여성은 더 많은 증명을 요구받고 승진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한국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리더는 남자가 해야지."

"네가 내 자리를 이어받아야지."

같은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각각 윗사람에게 들은 말이다. 같은 능력을 갖췄더라도 여성은 더 많은 증명을 요구받고 승진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한국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여성 CEO와 고위직 여성들이 '예외적 성공'이 아닌 '보편적 사례'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여성 임원 증가? 실질적 권한은 제자리

위민인이노베이션(WIN)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2020년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7.3%를 기록했다. 2019년(3.9%)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여성 임원의 증가가 곧바로 실질적인 경영권 확대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 개정 이후 여성 등기임원 수는 약 3배 늘었지만 대부분 사외이사 중심이다.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진 여성 사내이사는 2020년 2%에서 2024년 3.8%로 불과 1.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들이 법적 의무를 맞추는 데 집중하면서 여성 리더 육성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진 여성 사내이사는 2020년 2%에서 2024년 3.8%로 불과 1.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들이 법적 의무를 맞추는 데 집중하면서 여성 리더 육성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의 한 대기업에서 3년째 근무 중인 이모 씨(여·25)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사내에서 리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로 갈수록 남성이 압도적"이라며 "여성 리더를 보면 '엄청난 능력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여성으로서 결혼했는지, 자녀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승진 대상자는 남성이 훨씬 많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직원 대부분이 여성인데, 이 시기가 보통 경력을 쌓아야 하는 시점과 겹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 승진에 '보이지 않는 벽'

업종이나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여성 리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여성은 더 엄격한 검증을 받으며 승진을 위해 남성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 성수의 한 중견기업에서 상무이자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은정 씨(가명·여·58)는 "여성이 조직의 리더가 되면 일부 직원들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면 남성이 리더일 경우 자연스럽게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남성 직원들은 남성 리더에게 더욱 순응하며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승진 과정에서도 차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상무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나보다 경력도 낮고 커리어도 부족했던 남성 직원이 3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며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남자가 책임감 있다', '남자가 같이 일하기 편하다'는 식의 이유였다. 현재 우리 회사의 상무 5명 중 여성은 나 혼자뿐이다"고 했다.

한국에서 업종이나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여성 리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여성은 더 엄격한 검증을 받으며 승진을 위해 남성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은 '3·8 여성의 날' 기념 시위 중인 우크라이나 여성 /AP=연합뉴스

이어 "남성 중심의 인맥이 여전히 승진의 중요한 요인"이라며 "회식 자리에서 임원급 남성과 부하 직원이 '다음엔 네가 맡아야지'와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 일이 여전히 많다. 남성들만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가 승진을 결정하는 데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사 평가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인사고과 시스템이 더 합리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수직적인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함께 평가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리더십 평가도 단순히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배려, 성과, 조직 관리 능력 등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평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여성들이 사회에서 성장하려면 가정을 이룬 여성들도 동등한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 비율이 높은 직군에서도 리더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 비율 높은 직군도 승진의 벽은 여전

여성 비율이 높은 직군에서도 리더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30년 넘게 교직 활동을 해온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박영란 씨(가명·여·54)는 "20년 차였을 때 능력과 조건이 충분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무부장을 맡지 못한 경험이 있다"며 "관리자는 '그래도 교무부장은 남자가 해야지'라고 말했다. 업무 능력이 아니라 성별이 기준이 됐다"고 털어놨다.

교무부장은 학교 내에서 관리자 직책으로 승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박씨는 "임용고시 자체는 공정하지만 학교 내부 문화에서는 여전히 남성 교사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과거에는 학생부장 같은 주요 보직도 '남자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말했다.

"여성 리더가 예외 아닌 '새로운 기준' 되어야"

전문가들은 여성 리더들이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 내부의 승진 제도 개편과 여성 리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여성경제신문에 "기업 내 남성 중심 네트워크는 '자기 사람을 만들고 줄을 세우고 세력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주류가 남성이니 기업 문화 자체가 그렇게 흘러간다"며 "여성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이 승진하지 못하니 기업 문화가 바뀌지 않고, 기업 문화가 바뀌지 않으니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라며 "승진과 인사 시스템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여성들은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