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아메리칸드림 500만 달러에 팝니다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트럼프, 73억원짜리 새 이민 제도 발표 부자 이민자의 투자엔 고용 증진 없다
미국 영주권을 '그린카드'라 한다. 그린카드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전 세계 이민자들의 최종 목표다. 그린카드를 취득하기까지 과정은 험난하다. 그중 가장 많은 이가 선택하는 취득 루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그린카드를 신청하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려면 F-1이라고 하는 학생비자를 소지해야 하는데 학생비자 소지자는 캠퍼스 외에 취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외국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면 원칙적으로는 미국에 체류할 자격이 없어진다. 학생비자는 학생 신분으로서의 체류만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재학 중에는 '학과실무연수(CPT, Curricular Practical Program)'를 통해 교외에서 인턴십을 파트타임으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CPT는 교과와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학교에 상주하는 국제업무담당관(International Office)의 감시를 받는다.
졸업 후에도 '선택적 실무연수(OPT, Optional Practical Program)' 프로그램을 통해 1년간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자연과학과 이공계인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전공은 2년간 체류할 수도 있다. 이 기간에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을 구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의 지원을 받아 취업비자(H1-B)를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H1-B 비자를 얻기 위한 경쟁률은 살인적이다. 작년 한 해 78만명이 취업비자를 신청했지만 쿼터는 8만5000개에 그쳤다. 학사학위 소지자에 대한 쿼터가 6만5000개고 추가로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에게 2만 개가 할당된다.
취업비자의 유효기간은 3년이고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다. 이 기간에 H1-B 보유자는 영주권을 신청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 여기에는 또 고용자인 회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복잡한 절차와 비용 때문에 많은 회사가 영주권 스폰서가 되기를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우선 정부에 미국인을 채용하려 했으나 적격자를 찾지 못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취업 공고도 내야 한다. 정부는 무작위로 상당수의 지원자를 추출해 회사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지 감사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미국 이민국에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변호사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만만치 않고 진행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범죄사실이 없는지 백그라운드를 체크하고 인터뷰를 하고 지문을 찍은 뒤에야 꿈에 그리던 그린카드를 받는다.
그렇다면 취업하지 않고 미국 영주권을 받는 길은 없을까? 국제적으로 유명한 명장급 전문가가 아니라면 투자이민제도를 통해 그린카드를 취득할 수 있다. EB-5라 불리는 투자이민 프로그램은 100만 달러 안팎의 돈을 미국 내에 투자하는 사람만이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이민을 통한 영주권 취득의 조건은 까다롭다. 우선 비자 신청 승인에 최소한 몇 개월이 소요된다. 비자를 받은 후에는 영리사업에 투자해 10명 이상의 미국인을 고용해야 한다. 이들은 1주일에 35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이런 고용을 최소 2년간 유지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더하여 직원 급여를 비롯한 각종 비용을 지급할 수입원에 대한 증명도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투자만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투자사업이 순항해 본궤도에 올라 실제로 지역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
투자이민 후의 스트레스와 변호사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막대하다. 영주권 신청 후 수속 기간도 5년 가까이 소요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서류로만 사실을 확인하다 보니 사기의 소지가 있다는 비난도 크다.
투자이민의 혜택이 부동산에서 돈을 번 중국인 투자자에게 치중되어 있다는 문제도 있다. 투자이민 신청자는 브라질, 멕시코, 나이지리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쇄도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이민 쿼터를 가져가는 것은 중국 투자자다.
작년 한 해 중국인에 대한 투자이민 발급 건수는 전체의 69%에 달했다. 지난 10년간 4만여 건의 투자이민 비자가 중국인에게 발급되었다. 중국인은 미국 외의 나라에도 투자이민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같은 기간 중국인이 '골든 비자'라 불리는 투자 비자를 받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쓴 돈이 240억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중국인의 투자가 살기 좋은 도시의 부동산 취득에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캐나다가 대표적이다. 지난 5년간 캐나다의 집값은 40%가 올랐다. 평균 주택가격이 75만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10년 동안 주택 가격 상승률은 87%를 기록했다.
중국인이 선호하는 밴쿠버가 자리 잡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집값은 높게는 150% 가까이 올랐고 최대 도시 토론토가 소재한 온타리오주의 집값도 100% 상승했다. 호주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10년간 주택 가격이 거의 80% 상승했다.
이렇게 투자이민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EB-5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안이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이른바 '골드카드' 제도였다. '골든 비자'인 투자 비자와 유사하게 500만 달러의 거액을 내면 영주권을 바로 주겠다는 것이 트럼프 계획의 골자다. 500만 달러는 한화로 약 73억원이다.
아직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필요 투자 액수를 확 올려서 신청자 숫자를 줄이고 관리를 더 투명하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1조 달러의 수입을 올려 국가 채무를 줄이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골드카드에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투자이민은 본래 중소 자영업의 활성화를 통한 고용 증진에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도넛 가게도 열고 조그만 뷰티숍도 연다. 지역 경제의 고용 창출 효과가 분명하다. 하지만 500만 달러를 내고 영주권을 받은 기업가가 이런 사업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자가 선호하는 부동산, 레저, 금융에 돈을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가 고려하듯이 영주권 취득 후 거주 조건도 완화해 준다면 자기 나라에 거주하면서 미국 영주권을 신변 보호를 위한 쇼핑의 대상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주된 수요자는 어두운 엘리트 세력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그런 돈을 급히 받아야 할 만큼 유동성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다. 단지 트럼프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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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