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시공사 ‘갑-을’ 바뀌나···금싸라기 ‘수주전’ 발 빼는 건설사들

강남 3구 금싸라기 아파트도  한강뷰 단지도 '나홀로 입찰' 공사비 급등에 몸 사리는 건설사

2025-02-28     유준상 기자
2015년 12월 당시 서울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서초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시공사선정총회에서 개표가 끝난 후 GS건설 관계자가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유준상 기자

재건축 시공사 선정 시즌이 되면 바글바글했던 건설사들의 열띤 수주전 풍경을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인건비·원자재비 급등으로 공사비가 상승해 다른 건설사와 싸워 손실을 내면서 시공권을 따낼 이유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15구역 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이 27일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한 결과, 포스코이앤씨만 응찰해 유찰됐다.

방배15구역은 방배동 재건축 사업의 마지막 대규모 단지다. 방배동 463-13 일대 8만 4934㎡에 지하 3층 지상 25층, 1688가구 아파트와 상가 등 부대 복리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사비는 약 7553억원이다.

이곳은 2·4호선 환승역인 사당역과 4·7호선이 지나가는 이수역 사이에 위치한 더블 역세권으로, 방배동 알짜 단지다. 그럼에도 시공사들이 경쟁 입찰을 피하면서 유찰이 이뤄졌다.

강남권 다른 정비사업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초구 잠원동 알짜 재건축 단지인 신반포 4차는 이달 초 삼성물산만 단독으로 참여하자 결국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총공사비 1조원, 1800여 가구를 조성하는 대단지 사업인 데다,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이 닿아 있는 교통 요지에 자리한 만큼 건설사들이 서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지난 5일 2차 경쟁 입찰까지 무산됐다. 예상과 달리 건설사들이 일찌감치 발을 빼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골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근 반포동의 삼호가든5차 아파트도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입찰 기업이 없어 시공사 선정이 무산된 뒤 최근 공사비를 올려 다시 입찰을 공고했다. 

또 지난해 송파구에서는 △잠실우성 4차(DL이앤씨·공사비 3817억원) △가락삼익맨숀(현대건설·6341억원), 삼환가락(GS건설·4606억원)이 시공사를 선정할 때 단독 입찰에 따른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옛날과 다르게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장에서 최근 수주전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며 “강남 3구나 한강변 아파트도 예외 없이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이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경쟁입찰에 몸을 사리는 이유에 대해 여성경제신문이 취재한 결과, 최근 도시정비사업의 사업성을 따져봤을 때 경쟁입찰에 뛰어들 유인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식이 건설업계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통상 ‘투입한 공사비를 조합에서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느냐’가 건설사들의 재건축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 짓는 요소다. 그런데 조합과의 시공사 선정 계약 이후 공사비가 급등하게 되어 당초 조합에서 받기로 한 금액(계약 공사비)보다 착공 이후 실제로 지출하는 공사비가 훨씬 커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 침체 속 건설 공사비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인건비·원자재비 급등으로 최근 4년간 공사비가 약 30% 가까이 상승했다.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자재비는 53%, 인건비는 17.7% 공사비 상승에 기여했다. 

건설 공사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건설사들 대부분의 매출 원가율이 평균 9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매출 원가의 비율로, 이 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회사가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한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대우건설은 매출 원가율이 91.2%로, 지난해 영업이익(4031억원)이 전년 대비 39.2% 감소했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의 매출 원가율은 각각 91.3%, 90.9%로 집계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매출 원가율은 89.4%, DL이앤씨의 경우 89.8%를 기록했다. 

심지어 현대건설과 금호건설은 지난해 매출 원가율이 각각 100.6%와 104.9%(이하 잠정 실적 기준)로 집계되며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금호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기업은 모두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에 속하는 기업들이다. 굳이 경쟁입찰에 참여해 다른 건설사와 싸워 손실을 보면서 재건축을 따낼 이유가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수주전에 참여했다가 발생할 수도 있는 ‘매몰비용’도 건설사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 건설사 직원은 “홍보·마케팅·단지 설계 등 비용으로 최소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이상을 시공사 선정 전에 지출하게 되는데 수주 경쟁에서 지면 이 비용이 허공에 날아간다”며 “외주 업체 직원들의 인건비도 올라 부담이 더 커졌는데 요즘 같은 불황에 손실 처리하고 넘어가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장 경쟁 입찰 문화가 사라지면서 시공사가 조합을 상대로 ‘을’이 아니라 ‘갑’의 위치에서 협상할 가능성이 크다”며 “조합이 주는 공사비가 인상됨에 따라 조합원 분담금이 오르고, 결국 분양가·매매가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