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탄소를 배출한다고?···4대 금융, 배출권 거래로 감축 성공할까
탄소 간접 배출하는 '금융배출량' 1.57억t 2023년 배출량 순위 우리-신한-KB-하나 순 금융권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참여 확대 전망 다양한 지표 활용하는 관리 체계 필요성 대두
금융권이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온실가스 감축 전략에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기존에는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과 중개회사만 거래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은행과 보험사, 기금 등도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 금융권이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탄소 감축을 유도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에 시행된 배출권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금융권이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금융권의 참여가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고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금융배출량'이란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대출, 투자, 보증 등의 금융 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뜻한다. 금융권의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많지 않지만 이들이 대출과 투자를 통해 배출이 많은 기업에 지원한 결과 간접적인 금융배출량이 증가하는 구조다.
국내 금융권의 금융배출량 총합은 2023년 기준 약 1.57억t로 이는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1.9%에 달한다. 4대 금융지주의 금융배출량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23년 기준 우리금융 5817만t, 신한금융 5006만t, KB금융 4922만t(2022년 말), 하나금융 2379만t을 기록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금융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개발해 포트폴리오의 금융배출량 측정‧분석‧전략 수립‧실행 등 전 부문을 관리한다. 탄소회계금융협회(PCAF)의 온실가스 회계 기준에 따라 그룹의 금융자산을 7개 자산군으로 구분하고 자산 포트폴리오의 변동에 따른 탄소 배출량의 변화를 산출한다. 측정된 금융배출량은 탄소중립 전략을 위한 목표 관리, 기후변화 이행 리스크 파악, 심사 및 투자 과정, 금융배출량 상쇄 제도를 통한 친환경·친환경 전환 목적의 여신 심사 지원에 활용된다.
이번 배출권거래법 개정으로 금융권이 배출권 시장에서 보다 직접적인 역할을 맡게 됐지만 금융권이 이를 단순한 투자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탄소 감축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최근 국내은행의 금융배출량 관리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에서는 최근 금융배출량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은행들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은행들이 설정한 2030년 중간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은행들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감축 전략 등을 자율 공시하고 있지만 금융배출량 측정 방법 등이 아직 개발단계에 있어 공시 정보의 시점 및 은행 간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금융권의 금융배출량 감축 노력이 주로 탄소 배출이 많은 업종에 대한 신용 공급 축소에 집중되고 있어 저탄소 경제 전환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배출량 총량뿐만 아니라 배출집약도, 탄소 상쇄량 등 다양한 지표를 활용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며 기업의 친환경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금융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는 "은행의 금융배출량 감축 노력이 저탄소 경제 전환 촉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금융배출량 관리 지표의 다양화, 기업의 녹색투자 유인 제고, 기후 공시 및 녹색금융 표준화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금융권이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요한 변화"라며 "금융권의 역할이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탄소 감축 조정자로 확대되는 만큼 배출권 거래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이행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