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친퀘테레(Cinque Terre) 아찔한 절벽의 땅, 다섯 마을

[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쩌다 한 달, 이탈리아 (8) 바닷가 절벽 마을, 친퀘테레를 걷다 아름다움은 앓음에서 나온 말처럼 땀으로 일군 눈물겨운 아름다움의 절벽 마을

2025-02-27     박재희 작가
바다 끝 절벽 마을 친퀘테레를 걷고 마주한 리오마조레-마나롤라의 일몰 /사진=박재희

친퀘테레 (Cinque Terre)

아찔한 절벽의 땅, 친퀘테레에서

햇살에 물든 파도의 숨결로 색을 입힌 알록달록한 마을

푸른 바다가 안고 있는 절벽의 집들 사이를 걷는다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 손을 넣어 한 뼘씩 파내고 땀으로 가꾼 사람들

메마른 땅, 험하게 몰아치는 파도를 마주하고 꽃처럼 피어난 마을은 마냥 앓음답다

엘레나 할머니는 돌 위에 다시 돌을 쌓고 바위틈을 갈아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햇살을 품은 레몬 한 알, 땀으로 키워낸 알갱이마다 새콤한 눈물의 맛

거친 바람을 노래 삼아 견딘 열린 황금빛 열매는 마을을 달콤한 향기로 채운다

리오마조레, 가장 먼저 바다를 마주한 마을,

붉은 지붕이 저녁노을과 하나가 되고 어부들의 노래가 골목을 감싼다

마나롤라, 바위 위의 그림 같은 풍경,

비탈진 길 따라 포도밭이 흐르고, 해가 지면 바다는 별을 가득 담는다

코르닐리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

바다는 손에 닿을 듯 가깝지만 백 개의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다

베르나차, 오래된 성곽이 마을을 지키고,

자잘한 파도가 부서지는 작은 항구에서 사람들은 소란 소란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몬테로소 알 마레, 멀리 도망가는 해변,

푸른 파도가 부드럽게 밀려와 모래 위에 오래된 시간들을 쌓아둔다

아침이면 골목은 빵 굽는 냄새로 일렁이고 돌계단 위로 오렌지빛 햇살이 스며들었다

바다를 닮은 사람들은 낡은 나무배를 밀며 느릿느릿 하루를 열었다

비아 델 아모레를 걸으며 듣는 오래된 돌담에 새겨진 사랑의 숨결, 바람에 묶여 파도에 실려 가는 약속

포도밭 너머로 노을이 지면 마을은 다시 황금빛,

바다에, 하늘에, 노을에 마음을 빼앗긴 여행자는 천천히 녹아 시간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