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성의날] ① 100년 지났지만 ‘빵’만 받고 ‘장미’는 없었다

법은 평등해졌지만, 기회는 여전히 열세 여성의 권리는 쟁취의 역사, 아직 진행형

2025-03-03     김현우 기자
1908년 3월 8일 뉴욕 러트거스 광장. 미국 여성노동자 1만 5000여명이 모여 '노동환경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장면 /구글

1908년 3월 뉴욕의 겨울. 새벽부터 쏟아진 눈발이 거리를 덮었지만 여성 노동자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얇은 외투 속으로 매서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손에 쥔 피켓은 단단했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그날 거리로 나온 여성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노동환경은 비참했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신세였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빵을 요구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장미를 외쳤다. 이들의 외침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1910년 덴마크에서 열린 국제 여성 노동자 대회에서 ‘여성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년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1975년 유엔이 3월 8일을 공식적으로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성 인권의 상징적 기념일이 되었다.

한국 여성의 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60년대 여성 노동자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영희(87) 씨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때 투표를 할 수 없었다. 여자는 그냥 집에서 밥하고 애 보는 게 당연했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도 못 만들었다.” 김 씨가 20대였던 1950년대 초반 여성은 법적으로 참정권을 보장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적 발언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경제활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땐 여자가 직장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월급도 남자보다 훨씬 적었고 성희롱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냥 참아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1950년대 한국 여성들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인격체였지만 현실에서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 갇혀 있었다. 대한민국 여성에게 공식적으로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였다. 그러나 단순한 법적 선언만으로는 차별을 없앨 수 없었다.

경제활동의 기회도 제한적이었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은 주로 섬유·전자 공장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했다. 동등한 임금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의 40% 수준에 불과했다.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 포스터. 리벳공 로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나선 남성들 대신 후방의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상징이다. /AP연합뉴스

전직 섬유공장 노동자인 이명숙 씨(76·여)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 “그때는 여자 직원들이 아무리 오래 일해도 승진은 꿈도 못 꿨다. 관리자급은 다 남자였다"고 했다. 

1977년 한국은 ILO(국제노동기구)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협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더디게 진행됐다. ‘법의 변화’가 곧 ‘현실의 변화’가 되지는 않았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여성의 노동권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 이후 1997년에는 ‘성폭력방지법’이 시행됐고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됐다.

그러나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회적 인식이 단숨에 변화하지는 않았다.

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박모(45·여) 씨는 여전히 유리천장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고위직은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도 능력이 있으면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승진 심사에서 여성은 아무래도 불리하다”고 했다.

세계여성의날을 나흘 앞둔 지난 2023년 3월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노동연대회의가 주최한 2023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여성의 날이 100년 넘게 이어졌지만 여성 인권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한국은 2024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다. 남성 대비 여성의 평균 임금은 67% 수준에 불과하며 여성 임원 비율은 5.8%에 그친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평균(13%)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국내 대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은 6% 미만이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 19%(OECD 평균 30%)에 불과하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김영희 씨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혹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 때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여자들이 직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가 변하려면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에서 활약하는 여성 사외이사는 전년 대비 3명 늘어난 11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1년 새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만 놓고 보면 여성은 0.5%포인트 소폭 증가했다. 

이와 달리 범위를 넓혀 100대 기업 이사회(사내이사+사외이사)에서 활약하는 여성 비율은 1년 새 0.2%포인트 떨어지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 인원은 454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여성 임원은 110명이었다.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 중 여성은 24.2% 수준이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는 지난 2020년 35명(7.9%)→2021년 67명(15%)→2022년 94명(21%)→2023년 107명(23.7%) 수준을 보였다. 작년에는 전년 대비 여성 사외이사는 3명만 늘어나 0.5%포인트 소폭 상승에 그쳤다.

작년 기준 100대 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1명 이상 배출시킨 기업은 모두 90곳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 당시만 해도 100곳 중 30곳에서만 여성 사외이사가 두각을 보여왔는데 2021년 60곳→2022년 82곳→2023년 88곳으로 증가했다. 작년에는 이전해 대비 2곳 많아졌다.

문제는 상당수 대기업이 여성 등기임원을 법률에서 정하는 최소 인원만 채우려다 보니 이사회에서 활약하는 여성 등기이사 증가세가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8월부터 자산 2조 원이 넘는 기업에서 이사회(사내이사+사외이사)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로만 채워서는 안 된다는 관련 법 규정이 본격 시행됐다. 사실상 사내이사이든 사외이사이든 최소 1명 이상의 여성을 등기이사 자리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법 시행으로 2021년과 2022년에는 여성 사외이사가 이전해 대비 5%포인트 넘는 증가세를 보여왔다. 그러던 것이 2023년에는 전년 대비 2%포인트대로 낮아졌고, 작년에는 이전해 대비 1%포인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정민 한국여성인권협회 사무총장은 여성경제신문에 "1908년 뉴욕의 거리에서 울려 퍼진 빵과 장미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00년간 여성의 법적 지위는 변화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법이 아니라 사람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평등이 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