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 트럼프 악재 뚫어라···배터리3사 ‘혁신 기술’ 무기는

출력·에너지 5배 높인 원통 배터리   분리가 제거된 ASB 2027년 상용화 에너지 밀도 올린 고전압 미드니켈

2025-02-24     유준상 기자
현대차가 출시한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아이오닉7 이미지. /현대차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움직임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겹친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각자의 혁신 기술로 돌파구를 찾고 있어 눈길이 쏠린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보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는 각 사마다 이차전지의 안전성,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고유한 혁신 기술 개발에 주력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배터리 대비 에너지와 출력을 최소 5배 이상 높인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46시리즈를 개발했다. 46시리즈 셀 라인업(4680, 4695, 46120)는 내달 5∼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배터리 산업 전문 전시회 '인터배터리(INTERBATTERY) 2025에서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다.  

46시리즈는 기존 배터리 대비 에너지와 출력을 최소 5배 이상 높이며 원통형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는 제품이다. 또 배터리팩 구조를 간소화하고, 셀 수를 줄이면서도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 법인(LG Energy Solution Arizona, Inc.)은 작년 말 미국 전기차 기업 리비안과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총 67기가와트시(GWh) 물량을 5년간 납품 예정으로, 현재 건설을 진행하고 있는 애리조나 공장을 주요 공급기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의 열 전파를 차단하여 안전성을 높이는 ‘열 전파 차단(No-Thermal Propagation·No-TP)’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상품화에 나섰다. 이 기술은 배터리 특정 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셀과 셀 사이의 안전 소재가 열 전파를 물리적으로 막는 기술이다.  

열 전파 차단 기술이 적용된 차량은 특정 셀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셀 혹은 모듈만 교체하면 돼 배터리의 사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화재가 차량 전체, 주변 차량과 건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해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삼성SDI만의 독자적인 열전파 성능 예측 프로그램(Thermal Propagation calculator, TPc)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열전파와 관련된 주요 항목들을 정의하고 수치화해 특정 셀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인접한 셀이 받는 영향을 측정한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정성과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는 사실상 열 관리”라며 “외부 충격에 의해 셀이 손상되는 등 이상 조건에 노출될 경우 배터리 내부 압력과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인접한 셀에 열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요즘엔 주행거리와 성능 향상을 위해 배터리 셀의 개수, 용량과 에너지 밀도가 증가해 열전파의 파급력이 이전보다 커졌는데 열 전파 차단 기술은 파급력이 클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삼성SDI는 화재에 강한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위험성이 낮고 주행거리가 긴 점이 특징으로,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삼성SDI가 양산에 몰입중인 전고체 배터리명은 ASB(All Solid Battery)다. 이 배터리는 양극재는 동일하게 배터리 내부에 들어가지만 분리막이 완전 제거한 형태를 갖고 있다. 현재 한창 상용화된 액체 기반의 리튬이온 배터리 방식과 구조가 완전 다르다. 

리튬이온배터리와 ASB 비교. /산업통상자원부

삼성SDI는 2023년 12월 ASB 사업화 추진팀을 신설해 본격적인 전고체 배터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SB 사업화 추진팀은 삼성SDI 중대형전지사업부 내 직속 조직으로 전고체 배터리 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 새로 꾸려졌다.

삼성SDI 관계자는 “양산 적용을 위한 구체적인 스펙에 대해 고객들과 프로젝트 논의를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SK온은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방점을 찍는다. 파우치형·원통형·각형을 아우르는 모든 배터리 폼팩터(형태) 모두를 전략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석희 사장 주도로 46시리즈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파일럿 라인(시제품 생산 시설)을 준공하는 등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SK온은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킨 ‘고전압 미드니켈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했다. 미드니켈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 소재에서 니켈 함량이 50~70%인 배터리를 말한다. 값비싼 니켈과 코발트 함량을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에너지 밀도 향상을 위해 높은 전압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가격 경쟁력과 성능, 수명, 안정성을 고루 갖췄다”고 SK온은 자평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캐즘 장기화로 불황에 직면했다. 지난해 4분기 LG에너지솔루션은 2255억원, 삼성SDI는 2567억원, SK온을 자회사로 가진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은 3594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으로 올해 실적 개선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전기차 보조금 축소를 현실화하면서다. 

이같은 상황에서 배터리 업계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현금 확보를 위해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이사 보수 상한선을 지난해 대비 20억원 줄인 60억원으로 정했다. 삼성SDI도 같은 기간 이사 보수 최고 한도액을 12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낮췄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최근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과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정치적, 사회적 사상을 추종하는 행위)’이라는 악수를 맞는 상황에서 혁신 기술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며 “전고체, 리튬메탈, 리튬황 등 가격 경쟁력을 낮춘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